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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가득해야 할 집은 왜 감옥이 되어 버린 걸까?

집에 오지 않는 그대

연애 시절, 데이트 후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 결혼을 결심했다. 신혼 초에는 퇴근 후나 주말에도 집에서 편안히 데이트할 수 있고, 더 이상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마냥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언제부턴가 남녀는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는 자’와 ‘대체 언제 오냐며 기다리는 자’로 나뉘어 지루한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행복이 가득해야 할 집은 왜 감옥이 되어버린 걸까?

행복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둘이서 함께할 때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다.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에는 업무 압박으로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던 남자 주인공 지성준이 사랑하는 연인 김혜진의 집 앞으로 찾아가 “얼굴 봤으니 이제 됐다”는 달달한 멘트를 남긴 채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과연 지성준은 결혼 후에도 사랑하는 그녀가 있는 집으로 달려가고 싶을까? 드라마의 로맨스를 깨서 미안하지만, 결혼 후 그는 이제 집 밖으로 달려가고 싶어 안달 날 가능성이 크다. 퇴근 시간. 애인이 있는 동료는 화장을 고치고 남자 친구에게 달려갈 준비를 하지만, 결혼한 동료는 어쩐지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물며 애인이 없는 싱글도 집에서 맥주 한 캔과 함께 보는 영화를 고대하며 칼퇴를 준비하는데 말이다. 그 또는 그녀가 기다리는 집이 일거리가 가득한 사무실만도 못한 것일까?



불행한 결혼 생활은 불행한 집으로 이어진다
한국심리상담센터 강용 원장은 결혼 후 집에 들어가기 싫은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개인에 따라 여러 가지 이유와 다양한 문제들이 있지만, 공통적인 두 가지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하나는 결혼 전의 삶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는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했지만 결혼 후 그 모든 것을 뺏긴 듯한 억압과 심리적인 부담감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당연한 얘기지만 결혼 생활에 대한 불만과 갈등이 크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계속 회피하고 싶고, 다른 것으로 행복과 즐거움을 찾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집에 들어오기 싫은 자와 기다리는 자가 어떻게 노력해야 서로 한집에서 행복하게 만날 수 있을까? 강용 원장은 “들어오기 싫은 자와 기다리는 자 모두에게 문제가 있다. 때문에 먼저 서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대화로 풀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창조적이며, 미래 건설적인 대화는 부부 관계를 건강하게 하며, 이는 곧 행복한 가정과 집으로 연결된다, 두 번째는 공동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 한집에 있지만 따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 즐겁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서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목적이 있으면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둘이서 함께할 때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이재목 연애 컨설턴트가 알려주는 ‘집에 오지 않는 그’를 위한 솔루션
그가 집에 오지 않는 5가지 이유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어떻게 하든 이미 내 것’이며 ‘이미 다 알고 있는’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가봐야 뻔하다’는 식의 생각은 집이라는 ‘공간’과 부부라는 ‘관계’에 대해 자만하게 한다. 영화 <더 원 아이 러브>를 보면 자신과 똑같은 외모와 조건의 도플갱어가 배우자를 유혹하는 모습을 보고 권태를 극복하는 부부 이야기가 나온다. 배우자도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소중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가 오라고 하기 때문이다
혼자 살 때 최고의 매력은 나의 일정을 내가 컨트롤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싱글은 단순히 ‘짝이 없다’는 의미보다 ‘혼자서 잘한다’는 독립성이 강하게 대두된다. 그런 면에서 늘 집에 있으며, 늘 함께해야 하는 그녀가 늘 오라고 한다면 즉흥적이고 주체적이었던 옛 생활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조차 개인 시간과 행동에 자유가 없다면, 출퇴근 시간을 강요하는 직장 상사가 있는 회사와 다를 바 없다.

그녀와 할 게 없기 때문이다
집에서 그녀와 함께하는 일이라고는 ‘저녁 식사, 분리수거, 청소, 설거지, 세탁물 분리, 일과 보고(?)’ 등 ‘생활 밀착형 프로그램’들 뿐이다. 마치 매일 재방송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지루하고 특별한 의미가 없다. 때문에 더 흥미로운 무언가가 있을 집 밖의 어딘가로 자꾸 가고 싶은 것이다. 집은 그저 재미없고, 궁금하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최선을 다해서 더 늦게, 더 조금만 머물려고 할 것이다.

그녀와 할 게 많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한 직장인도,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한 주부도 피곤하다. 맞벌이 부부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퇴근해서는 쉬고 싶은데 집에 들어가봤자 더 고통스러운 의무만 남아 있다면 당연히 더 늦게 들어가고 싶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나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려야 하고, 집안의 소소한 일들을 의논하는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의견을 묻기만 할 뿐, 어차피 그녀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집이라는 공간이 또 하나의 ‘과제’로 생각되는 순간 회사처럼 자꾸 지각을 하게 된다.

애초에 집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연애 시절 두 남녀는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고, 집에 들어가는 게 아쉬웠다. 생각해보면 집이라는 공간은 그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곳이었다. 집보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것이 더 좋기에 혼자 살았든, 부모와 살았든 집이라는 공간이 우선일 수 없다. 애초에 밖에 즐거운 무언가가 없을 때 쉬러 돌아가야 할 곳일 뿐이다. 그러나 시간을 투자해서 내 의지로 만났던 그 대상은 결혼 후 점점 집과 동일시될 수밖에 없다. 갈수록 집이 되어가는 그녀가 있는 공간을 회피하고 싶다.


그를 집에 오게 하는 5가지 방법
부부는 이심이체임을 인정하라
한국 사회는 늘 조직과 하나 되길 강요한다. 부부 역시 마찬가지다. 공식적으로 부부임을 축하하는 첫 자리인 결혼식 주례사에서조차 ‘부부는 일심동체다.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하고 늘 하나가 돼라’고 한다. 하지만 부부는 절대 일심동체가 아니다. 함께 살다 보면 나와는 너무 다른 배우자를 보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집에서 행해지는 결혼 생활은 나와 모든 것이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형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활 습관, 방식, 가치관 등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공동생활 공간이 집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집을 생존 수단으로만 여기지 마라
데이트 상대가 식당에서 말없이 밥만 먹는다면 호감이 가겠는가? 연인 사이의 밥은 ‘생존의 수단’이 아닌, ‘소통과 유희의 수단’이다. 집으로 대변되는 결혼 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결혼은 생활’이라는 고루한 전제를 맹신하는 순간 집은 미래를 계획하고, 전략을 짜는 생존 공간으로 변질되기 쉽다. 결혼하자마자 출산 계획을 짜고, 80세를 걱정하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녀의 미래까지 고민하는 것이다. 오지 않은 미래 걱정에 연애 시절 즐기던 ‘가로수 길 브런치’도 생략한 채 말이다. 집을 더 나은 경제적 생활을 위해 인내하는 곳으로 만들면 80세가 되기 전에 다른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훨씬 높다.

집에 있지 마라
내가 무엇을 하든 내가 언제 들어가든 늘 집에서 나를 기다려줄 것이라는 상대의 착각을 깰 필요가 있다. 부부는 부모 자식 관계처럼 운명에 의한 혈연관계가 아닌 기호에 의한 선택 관계임을 늘 인지시키는 것이야말로 균형 있는 부부 관계의 핵심이다. 앞서 ‘그가 집에 오지 않는 이유’에서도 언급했듯이 항상 나를 지켜주는 그 사람의 존재는 나에게 든든한 안정감과 안도를 주는 동시에 권태를 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재중일 수도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모습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집에서 다 하지 말라
남녀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절대 집에서 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 칼럼의 가장 큰 본질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결혼은 20평(66㎡) 남짓한 공간에서 하루 종일 갇혀 있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설사 그렇게 갇혀 있는 것이 좋은들 얼마나 가겠나! 동거하다가 깨지는 커플 대부분의 원인 역시 ‘집’이다. 영화관, 맛집, 여행 대신 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집에만 있다 보면 사회생활을 할 때와는 다른 복장과 태도로 있게 마련이고 당연히 설렘이나 이성적 매력은 식기 마련이다.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를 실천하라
밖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복장, 언행, 행동 등으로 발생한 체력적, 정신적 소모를 보충하고 휴식하기 위해 찾는 곳이 집이다. 단순히 안전한 수면을 위해서라면 호텔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편안해야 한다. 나의 실수, 허물, 피곤함도 모두 내려놓고 안김을 받고 싶은 곳이다. 그런데 오히려 밖에서보다 더 큰 스트레스에 불편한 공간이라면 이보다 고통스러울 수는 없다. 잔소리로 일관된, 여야가 충돌하는 국회 본회의장 같은 대립으로 일관된 집은 집으로서의 가치와 본질을 잃은 감옥일 뿐이다. 배우자를 힐난할 바엔 차라리 침묵을 선물하라. 개체로서 갖고 싶은 시간과 공간을 최대한 배려하라. 내일 아침 특별한 일이 없는 휴일이라면 ‘저녁형 인간’인 그에게 늦잠을 보장하라.

김수영 기자 일러스트 조성흠 도움말 강용(한국심리상담센터 원장 02-545-7080), 이재목(듀오 연애컨설턴트)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15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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