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함께 사는 배우자를 맞는 결혼. 그러나 그 배우자 결정을 순간에 맡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직 결혼 생각 없다’고 습관처럼 말하던 남자가 새로운 만남으로 3개월 만에 결혼한 이야기나, 10년 사귀다 헤어진 커플이 각각 다른 이성을 만나 1년도 안 되어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된 배용준, 박수진 커플의 예도 크게 다르지 않다. 2월에 만나 5월에 결혼 발표를 했으니 그야말로 ‘초고속 결혼’인 것이다. 이렇게 신속하게 결혼을 결정하는 심리는 무얼까? 여아림부부가족상담센터의 최혜숙 소장은 이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첫눈에 콩깍지가 씌였다면 곰보도 보조개로 보일 정도로 낭만적인 감정에 빠지게 돼요. 상황적으로 커플 중 한쪽이라도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나이라면 가슴 설레는 만남 앞에서 결혼을 서두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봐요. 혼자 사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기대와 욕구가 반영된 결과겠죠.” 반면 한국심리상담센터의 강용 원장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긍정적으로는 자신이 이상형을 만났다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이 현실적으로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도피하고자 하는 무의식으로 갑작스러운 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가족이나 지인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기도 하고요. 이런 경우는 자신의 신중한 판단과 선택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죠.”
초고속 결혼, 이래서 좋고 이래서 안 좋다
평생을 좌우하는 결정이기에 더욱 시간을 들여야 하는 건지, 이왕 할 거라면 망설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나은 건지 해답은 없다. 오랜 연애 기간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보장한다는 근거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초고속 결혼의 장단점은 무엇일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GOOD
시간과 돈 절약 “집안끼리 아는 사이였고, ‘선’에 가까운 소개팅으로 결혼을 빨리 결정했어요. 연애하며 서로 탐색하며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어 좋았죠. 그리고 어차피 결혼할 사람이라고 생각해 아내에게 투자하는 게 아깝지 않았어요. 일찌감치 데이트 통장도 만들게 됐고요.”_김선우(34세, 직장인)
연애하는 기분 “아내와 잠자리 한 번 하지 않고 결혼했어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아내는 언제나 저에게 신비스러운 존재였죠. 그래서 결혼한 뒤에도 아내를 볼 때마다 설레고 행복했어요. 마치 연애하는 것처럼요.”_구준상(32세, 직장인)
경청과 배려 “아직 남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생각에 의견 대립이 생길 때도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보려고 해요. 함께 결정해야 할 사안에도 제 생각을 먼저 내세우기보다는 의견을 듣고 결정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툼이 줄어드는 느낌이에요.”_김수진(29세, 교사)
BAD
이해 부족 “아직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더 많아서 사소한 부분에서 오해가 생길 때가 있더라고요. 결혼 전에 미처 모르던 부분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땐 정말 당황하게 돼요. 예를 들어 남편의 생활 습관이라든지 주변 인간관계에 관련된 것들. 이런 건 대화로 쉽게 바꿀 수 없는 거라 답답할 때가 많죠.”_이서영(33세, 가사)
어색함과 불편함 “결혼하면 평생 내 편이 사람이 생겨 편안할 줄만 알았는데 이게 웬 걸? 오랜 자취 생활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 익숙했는데 아내는 그런 저의 성향을 잘 모르니 늘 제 옆에 붙어 있으려고 하거든요. 그러면 가끔 어색하고 불편해서 어쩔 줄 모를 때가 있어요.”_김준상(36세, 전문직)
배우자 가족과의 갈등 “교제 기간이 짧은 만큼 아내의 가족들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가 없는 상태였어요. 결혼하고 보니 처갓집 식구들은 우리 가족과 다르게 지나치게(?) 친밀한 면이 있더군요. 사소한 결정을 할 때도 가족들 의견이 개입되기도 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는 건 예사고요. 배우자 가족의 성향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건 가장 아쉬운 부분이에요.”_한승진(35세, 회사원)
이명길 연애 코치가 조언하는 ‘초고속 결혼’해서 잘 사는 법
1 환불 및 교환 불가에 대한 약관을 확인하라
청바지, 세탁기 등은 구입하고 난 후 마음이 바뀌거나, 제품에 하자가 있으면 바로 교환이나 환불이 가능하지만, 결혼은 교환이나 환불이 어렵다. 공정위나 소비자원에 따진다고 될 일도 아니다. 솔직히 몇 개월 더 만난다고 상대방의 치명적 단점을 알아차릴 확률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충동구매’(?) 방지 차원에서 최소한 1년은 만나고 결혼하길 권한다. 그 정도는 연애해야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충동구매로 인한 좌절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미 결혼했다면, 환불이나 교환 불가에 대한 약관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마음가짐을 제대로 가져야 한다. 평생 그렇게 날 이해해줄 것 같았던 그 사람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게 되면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결혼하면 환불 및 교환 불가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충동구매이기에 결혼도 환불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2 신혼마저 연애 기간으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혼은 진짜 연애의 시작이다.” 괴테의 말이다. 연애는 장점을 자랑하는 시간이다. 좋은 곳에 가고, 맛있는 것 먹고, 재밌는 것만 본다. 시간적,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지만, 이 시간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키워준다. 결혼은 단점을 이해해야 하는 시간이다. 비효율적인 연애를 끝내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결혼 생활을 시작하다 보면 서로의 단점이 보이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결혼 후 변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변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단지 꾸미지 않은 순수한 서로의 모습을 확인했을 뿐이다. 행복한, 비효율적 연애 기간을 짧게 끝낸 만큼, 신혼을 연애 기간으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통 결혼 1년 차나 아이가 생기기 전 시기를 신혼이라 하는데 초단기 연애 후 결혼했다면 이때까지 ‘비효율적’ 결혼 생활을 해도 괜찮다. 곧 시작될 ‘진짜 연애’ 때 사용할 사랑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함이다.
3 ‘같이 또 따로’가 중요하다
언젠가 결혼 안 한 후배가 결혼한 선배에게 물었다. “형, 결혼하면 어떤 느낌이에요?” “응, 여자 친구가 내 방에 놀러 와서 함께 맛있는 거 해 먹고, 재미있는 것도 같이 보고, 잠도 자고 즐거운데… 집에 안 가! 여친 집에 보내고 게임도 하고, 혼자서 좀 놀고 싶은데…” 남자 입장에서 쓴 글이지만, 여자도 마찬가지다. 행복하게 오래 연애하는 커플들은 ‘같이 또 따로’ 하는 법을 안다. 늘 ‘같이 또 같이’ 하는 것이 힘들고 지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연애 기간이 짧아 아쉬운 마음에 늘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며 그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 있어도 남편은 자기 하고 싶은 것 하고, 아내 역시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같이 또 따로 할 줄 아는 현명한 커플이 결국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한다. 작은 다툼의 백신 효과를 누려라 2년 8개월 연애하고 결혼했건만, 결혼 후 라면 봉지 하나 때문에 이혼할 뻔했다. 분리수거를 고집하는 아내와 내 집에서 라면 하나 맘대로 못 끓여 먹느냐는 나는 치열하게 싸웠고, 결국 쓰레기 분리수거의 초고수가 되었다. 최근 서울시 쓰레기 분리수거 정책을 보면, 참으로 다행이다. 부부싸움이라고 다 나쁜 것이 아니다. 때로는 작은 다툼이 큰 싸움을 예방해주는 ‘백신 효과’가 있다. 연애가 짧아 서로 싸워본 경험이 없을수록 더 잘 싸워야 한다. 싸움을 너무 크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커플들이 다 싸우고 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서로 부딪쳐가면서 네모가 세모가 되고, 결국 동그라미가 되어 서로 비슷하게 닮아가는 것이 부부다.
4 흥분했을 때는 30분간 혼자 두어라
연애가 짧다는 것은 그만큼 ‘비상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다툼이 생기면 급변한 상대의 모습에 실망하고, 실망한 만큼 싸움이 격렬해질 수 있다. 격렬하게 싸울 때 알아야 할 팁이 있다. 버클리 대학 레벤슨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갑자기 ‘꽝’ 하는 소리가 났을 때 더 흥분하는 것은 ‘남자’였다. 여자들이 더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남자가 더 오래 걸렸다고 한다. 부부싸움을 할 때 뇌파를 측정한 실험은 더 흥미롭다. 아내는 감정이 격해지면 서서히 흥분했다가 약 5분 후부터는 안정 상태로 돌아오지만, 남편들은 부부싸움이 끝나고 약 25분 이상 흥분 상태가 지속되었다고 한다. 보통 다투는 남녀의 심장 박동수는 100bpm 정도인데, 전문가들은 심장 박동수가 100bpm을 넘어가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워진다. 보통 ‘이럴 거면 그냥 이혼해’ 등과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할 때가 심박수 100bpm 이상인 경우다. 부부싸움을 하게 되면 잠시 말을 멈추고, 딱 30분만 남편을 혼자 두어라.흥분한 남편에게 필요한 건
딱 30분의 시간이다.
5 다툼은 48시간을 넘기지 않고 푼다
‘세상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서로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말이다. 부부가 다투는 이유는 비슷한 면이 있지만, 화해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보통 다툼은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왜 우리가 싸우는가?’에 대한 이유는 사라지고,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이성적인 다툼이 감정싸움으로 번지는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48시간이다. 화해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부부싸움이 ‘물베기’가 아니라 ‘무베기’가 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6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쓴다
연애 기간이 짧다 보니 아직 관계가 뜨겁다. 그렇게 서로에게 집중하는 나머지 주변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연애는 둘이 하는 것이지만, 결혼은 가족끼리 엮인다. 둘만 행복하면 ‘그리고 이후 영영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Happily Ever After)’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틀린 생각이다. 서로에게 진짜 가족이 된다는 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심지어 내 남편의 가족들과 진짜 가족처럼 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초고속 결혼에 순탄하게 골인하려면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DO 선택하고 집중한다 따지고 또 따져서 만나도 ‘고장’이 발생하는데 초고속으로 선택한 결혼에 고장이 없으리란 법이 없다. 상대의 단점보다 자신이 왜 그를 ‘선택’했는지 그 ‘장점’에 집중해야 한다.
DO 적절히 포기하고 적절히 양보한다 장점에 집중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포기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면 양보와 빠른 포기가 빠른 결혼으로 이끈다.
DO 불같이 사랑한다 초고속 결혼은 크게 2가지 케이스로 나뉘는데 첫째는 모두가 꿈꾸는 불같은 사랑, 둘째는 치밀한 계산으로 조건을 맞춘 결혼이다. 조건이 꼭 들어맞지 않는 이상 ‘눈에 뭔가가 씌였다’ 싶을 정도로 불같은 사랑이 결혼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
DON’T 속도를 위반한다 아기가 ‘혼수’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현실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임신했으니 결혼이나 하자는 ‘속도위반’은 고난의 시작이다. 빠른 결혼을 위한 안일한 임신은 결혼 생활과 부부관계를 불행하게 만든다.
DON’T 남들과 비교한다 어차피 대부분의 남자는 다 ‘고장 증상’이 있다. 연예인도 훈남 셰프도 다 마찬가지다. 버릴 것이 아니라면 남과 비교하기보다 내가 가진 것을 잘 고쳐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DON’T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한다 연애를 하다 보니 결혼하는 것이지 결혼하려고 연애하는 것은 아니다. 짧더라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야 한다. 그래서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이유가 생겨야 한다. 결혼을 서두르는 사람들은 ‘결혼’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만, 인생을 크게 보면 결혼 역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글 전희란 기자 일러스트 조성흠 도움말 강용(한국심리상담센터 원장 02-545-7080 www.mykpcc.com) 이명길(듀오 연애코치 www.duo.co.kr), 최혜숙(여아림부부가족상담센터 소장 02-6221-3700 www.happybubu.co.kr)
초고속 결혼 이야기
오빠, 우리 좀 빠른 거 아니야?
얼마 전, 만난 지 3개월도 안 되어 결혼을 결정한 배용준, 박수진 커플의 이야기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평생을 함께할 사람인데 지나치게 성급한 결정이 아니냐는 의견과 결혼하고 싶다면 더 미룰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초고속 결혼을 결정하게 되는 심리와 장단점, 짧은 만남에도 잘 사는 길에 대해 알아봤다.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15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