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미들턴의 왕자님 쟁취하기
2011년 4월 29일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한때 모나코의 안드레아 왕자와 함께 리얼 프린스 후광을 빛내며 전 세계 소녀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이 열렸다. 왕자님과 결혼을 꿈꿨던 대부분의 소녀들은 여러 가지 장애물을 고려해 마음을 접었지만, 야심가 케이트 미들턴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엔 왕자님과 결혼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게 된다는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이다.1982년 6월 왕족으로 태어난 윌리엄과 1982년 1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케이트는 유전자부터 확연히 달랐지만 한 사람의 노력 끝에 이들의 운명적인 만남은 시작된다.
그녀는 자신의 최대 조력자, 엄마의 뜻에 따라 명문 기숙학교를 다녔다. 당시 10대들은 또래 왕자들을 동경했고 케이트 역시 왕자님과의 결혼을 꿈꿨다. 실제 10대 시절 케이트의 방은 윌리엄 왕자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고 한다. 19세가 된 윌리엄은 칠레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 왕자를 따라 케이트도 칠레로 떠났으나 이때는 만나지 못했다. 이후 그녀는 엄마의 조언에 따라 왕자와 같은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에 진학한다. 그리고 왕자가 교내 자선 패션쇼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직접 워킹모델에 지원한다.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자신의 몸매를 뽐내며 모델로 등장한 케이트에게 윌리엄 왕자는 호감을 보였다. 이후 그들은 친구들과 함께 아파트에서 룸메이트로 지내고, 커플로 발전해 10년 동안 만남을 이어갔다.
전 세계가 지켜본 결혼식
2011년 4월 29일,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동화 같은 결혼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날 결혼식은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 수준인 20억 명이 시청한 것으로 추산됐으며 초대된 하객만 1900명에 달했다.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의 집례로 이들의 혼인 예배가 진행되고 신랑 신부는 혼인 서약에서 “I will”이라는 단 두 단어로 남편과 아내로서 새로운 삶을 약속했다. 혼례가 끝난 뒤 신랑, 신부는 영국 전통 마차인 1902년식 스테이트 랜도우를 타고 버킹엄 궁까지 퍼레이드를 펼쳤다. 이어 버킹엄 궁 발코니에 나와 수많은 축하객에게 답례하고, 전통에 따라 두 차례 키스 장면을 연출했다. 버킹엄 궁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하객 650명을 초청, 오찬을 베풀었다. 저녁에는 윌리엄 왕자의 부친인 찰스 왕세자가 300명을 초청, 만찬과 무도회를 열었다. 앞서 신랑 신부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첫 번째 왕실 선물로 케임브리지 공작부부 작위를 받았다.
로열 웨딩에서 세계인들의 관심을 독차지한 것은 단연 이들의 웨딩 반지와 케이트 미들턴의 웨딩드레스다. 윌리엄 왕자는 케냐 여행 도중 케이트에게 청혼을 하며 3캐럿짜리 짙은 파란색의 사파이어를 건넸다. 이 반지는 윌리엄 왕자의 어머니인 故 다이애나비의 약혼반지이기도 해 윌리엄 왕자에겐 더욱 뜻깊었다. 결혼식 당일 케이트가 낀 결혼반지는 영국 보석 업체 와츠키가 제작했다.
모두가 기대했던 케이트의 웨딩드레스는 영국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수제자인 사라 버튼이 디자인했다. 디테일한 레이스 디자인이 돋보이는 드레스는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자아내며 그녀의 수수한 모습과도 잘 어울렸다. 머리에는 왕관 모양의 티아라를 장식했다. 또 이날 결혼식 케이크는 케이티가 전통적이면서도 모던한 스타일로 주문했고, 비스킷은 1700개, 초콜릿은 17kg이 준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결혼식에 든 비용은 약 3400만 달러로 추산된다. 결혼식에 쓰인 꽃 장식 비용만 80만 달러로 알려졌으니 아버지에 못지않은 호화 결혼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무엇보다 이들의 결혼식이 인상 깊었던 것은 윌리엄 왕자가 케이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보였다는 점이다. 그는 부모님의 불행했던 결혼 생활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항상 가슴 한쪽에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왕자님이 케이트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길 국민들은 진심으로 바랐다. 그에 힘입어 이들 부부는 결혼한 지 2년 3개월 만에 로열 베이비를 낳았고 최근 둘째 임신 소식을 전하며 행복한 스토리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10년간의 만남이 순항만 한 것은 아니다. 윌리엄이 여자 문제로 속을 썩일 때도 있었지만 그녀는 모두 감수했다. 2007년 윌리엄이 이별을 통보하며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그 후 윌리엄은 바로 새로운 여자 친구를 사귀는데. 그녀는 바로 윌리엄의 어릴 적 친구 이사벨라 칼소프. 귀족 출신 배우이자 모델이다. 왕자가 몇 번이나 프러포즈했지만 그녀는 쿨하게 거절하고 연하의 재벌 미남과 결혼한다. 다시 케이트에게 돌아온 윌리엄 왕자가 자잘한 스캔들을 일으키지만 케이트의 가족들은 참고 받아주라며 충고했다. 당시 케이트의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서른 살 때까지 직업 한번 가져본 적 없었고 20대를 왕자와의 연애, 화려한 파티로 보냈으며 왕자의 프러포즈만을 기다려 언론이 붙여준 별명이 ‘waity katie’, ‘lazy katie’였다. 이런 여자한테 세금을 내기 싫다는 사람도 많았던 게 사실. 그러나 기나긴 인내의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드디어 프러포즈를 받게 되었고 의지의 케이트 미들턴은 현실 속 신데렐라가 되었다.
동화같이 아름다웠던 로열 웨딩
윌리엄 왕자&케이트 미들턴
진짜 로열패밀리 영국 윌리엄 왕자와 그의 피앙세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은 한 편의 동화 같았다. 결혼식만큼 특별했던 이들의 러브 스토리와 세기의 결혼식이라는 타이틀에 가장 잘 어울리는 로열 웨딩의 모든 것.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14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