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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삶

마이클 엉거, 임성민 부부

운명 같은 만남은 마이클 엉거, 임성민 부부를 결혼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성큼 들여놓았다.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부부는 한 번쯤 부딪힐 만도 한데 결혼 3년 차가 되도록 눈살 한 번 찌푸린 기억이 없다. 국경 따위는 문제되지 않을 만큼 믿음과 사랑이 크기 때문이다.


(마이클 엉거) 화이트 셔츠, 숄칼라 슈트 모두 라바르카. (임성민) 블루 그레이 벨 라인 드레스 럭스엘리자베스. 블루 컬러 귀고리 프란시스케이.
마이클 엉거는 부드럽고 배려심이 깊었다. 자신의 촬영까지 한 시간 넘게 기다렸음에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고 카메라 앞에 선 임성민을 향해 끊임없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임성민은 씩씩한 여자였다. 아나운서 출신답게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말했고 카메라가 어색한 남편을 잘 이끌었다. 한눈에 봐도 다른 성향이 느껴지는 부부였지만 함께 카메라 앞에 섰을 때는 더없이 행복한 케미를 발산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상대방의 장점을 인정하며 살아왔다는 마이클 엉거•임성민 부부, 그들의 결혼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마이클 엉거) 화이트 셔츠 마크론슨. 베이지와 브라운 컬러 슈트 로드앤테일러. (임성민) 불망 소재의 A라인 웨딩드레스 라브리디아. 화이트 큐빅 오픈토 슈즈 세라. 블루 컬러 귀고리 케이트앤켈리. 


운명적인 만남이 결혼관을 바꾸다
마이클 엉거와 임성민의 만남은 한마디로 운명적이었다. 2008년 2월 한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서로 부부의 인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7개월 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가 운명임을 직감했다. 마이클 엉거는 그 당시 임성민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웃음이 절로 번진다. “정말 멋진 여자였어요.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동안 배우로 레드 카펫에 서기도 하고 행사의 진행자가 되기도 했죠. 밤에는 파티에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었고요.” 임성민의 매력에 푹 빠진 마이클 엉거는 그녀에게 춤을 제안했고 바닷가를 배경으로 꿈속의 동화 같은 추억을 만들었다. “마이클의 해맑은 눈동자에 푹 빠졌고 행복한 미소가 정말 좋았어요.” 당시 마흔에 접어들었던 임성민은 사실 결혼을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오로지 일에만 열정을 쏟으며 20, 30대를 보냈고 어느새 40대가 되어 있었다. 자연스레 결혼은 남 일처럼 느껴졌고 결혼으로 인해 겪을 혼란도 두려웠고 환경이 바뀌는 것에 예민했으며 일과 결혼 생활을 모두 잘해낼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마이클 엉거는 그런 그녀의 생각을 뒤엎었다. “내 일과 시간을 존중해주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이라면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9개월간의 장거리 연애는 뜨거웠고 오로지 임성민과 같은 곳에 있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마이클 엉거는 한국으로 날아와 정착했다. 마흔이 넘어서 찾아온 소중한 인연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에 대해 무덤덤했던 이들은 결국 2011년 10월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다.

아내 같은 남편, 남편 같은 아내
임성민은 외국인 남편과의 생활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외국인이어서 특별한 것은 없지만 성향이 달라 부부의 역할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배려심이 많고 애교가 넘치는 마이클 엉거는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는 아내의 모습에 더 가깝다. “남편은 제가 자고 있으면 까치발을 들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 다녀요. 둘밖에 없는 공간에서도 소곤거리며 귓속말을 하죠. 그리고 제가 배우라는 것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해줘요. 마치 내조를 받고 있는 기분이 들죠.” 그에 반해 임성민은 남편 역할을 한다. 마이클 엉거가 한국어와 문화에 익숙지 않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할 굵직한 일들을 모두 그녀가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 계약부터 비자를 받는 문제까지 모두 알아서 하죠. 힘들 때도 있지만 나를 위해서 한국을 선택한 남편에게 당연히 할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문화가 익숙지 않았던 마이클 엉거는 1년 동안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애를 먹었다. 그는 술자리나 밥자리를 통해 인간관계를 쌓아가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임성민은 그에게 한국 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이해시켰고 주변인들에게 남편의 성향을 대변하기도 했다. 덕분에 그는 한국에 적응할 수 있었고 3년이라는 시간을 잘 지낼 수 있었다. 역할이 바뀌었지만 전혀 불편함이 없는 관계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서로 해야 할 역할들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이트 셔츠 마크론슨. 블루 컬러 슈트 휴고보스.
블랙 레이스 튜브톱 드레스 오쉐르웨딩.
다름을 인정하라
정서와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만나도 끊임없이 부딪히는 것이 결혼 생활이다. 하지만 마이클 엉거와 임성민 부부는 지금껏 크게 다툰 일이 없다. 임성민은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간섭이 많은 집에서 자랐어요. 스트레스가 심했죠. 그래서 늘 생각했어요. 절대 누구에게도 간섭하거나 강요하지 말자. 죽어도 해야 하는 건 없다고요.” 그녀의 이런 성향은 남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 역시 항상 임성민을 존중했다. 그녀의 개인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아내가 아닌 인간 임성민으로 아끼고 사랑해주었다. 임성민은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둘도 없는 내 편’이 생겼다고 말한다. “결혼을 앞둔 부부들에게 상대방을 나에게 맞추려 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 그게 바로 부부간의 의리이니까요.” 부부는 늘 지금처럼 존중하고 처음의 운명적인 만남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평생을 의지하며 살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14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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