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토벤 음악에 매료돼 지휘자의 길에 들어 선 24세 청년은 베토벤이 음악 활동을 하던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갔고, 도착한 바로 다음 날인 1989년 12월 어느 날 외국에서 처음 만나는 한국 사람이자 운명의 여자인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노래하던 곱디고운 모습에 끌려 악보를 빌려달라는 핑계로 다음 날 약속을 잡았다. 일주일 만에 사랑을 고백하며 결혼 프러포즈를 할 때, 23세의 그녀는 수줍게 ‘예’라고 답했다. 노래 가사, 영화 소재에나 나올 법한 이 스토리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배우 김명민이 맡았던 ‘강마에’의 실제 모델이자, 밀레니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서희태와 그의 아내 소프라노 고진영 부부의 이야기다.
“만난 지 일주일 되는 날, 남편은 이탈리아 작곡가 가스탈돈의 곡 ‘금단의 노래Musica Probita’를 불러줬어요. ‘그대의 입술과 검은 머리/네 고운 입 맑고 빛나는 두 눈/ 어여뻐라 나의 천사여’라는 가사였는데, 꽃다발과 함께 이 노래를 바치며 감미로운 프러포즈를 받았죠.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나고, 가슴이 벅차올라요.”

결혼은 함께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화음
프러포즈를 한 뒤 8개월 만인 1990년 8월 18일, 부부는 잠시 귀국해 시댁이 있던 부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 당시 웨딩 촬영과 웨딩 앨범이 붐을 타기 시작한 시점이었는데, 양가 집안이 실용주의를 주장해 친척이 찍어준 몇 장의 스냅 사진만 남아 있을 뿐 변변한 촬영 없이 결혼식을 마쳤다. 드레스와 턱시도도 연주복으로도 입을 수 있는 실용적인 디자인을 고르고, 예단과 예물 없이 심플한 커플 반지 하나씩 나눠 끼는 것으로 대신했다. 외국에서 유학한다는 이유로 신혼여행도 생략하고 간소하게 결혼식을 마친 뒤 다시 유학길에 올랐다.
“25세 어린 나이에 결혼식을 올려서 양가 어른들이 정해주시는 대로 따랐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쉽고 후회되는 부분도 많지만, 그 당시에는 운명적인 사랑을 깨닫고 저 하나만을 보고 따라와준 아내의 용기에 더욱 감탄했죠. 부부가 되는 것은 조건을 앞세워 재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된 하모니를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의 목소리와 아내의 목소리가 합해져 크고 웅장한 사운드를 만드는 것,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 하나 된 목소리로 소리를 내는 것이 결혼이라고 저희 부부는 굳게 믿고 있답니다.”

‘남편은 하늘이고, 아내는 땅이다’라는 가부장적인 말도 생각하기 나름. 결혼 생활동안 남편을 하늘로 생각하고, 자신을 땅이라고 여기는 아내는 어느 것이 더 높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이 공평하게 조화로워야 결혼 생활이 단단해진다고 믿는다. 그 땅과 하늘에서 지금은 23세, 21세 대학생이 된 아이들과 꽃밭 가꾸듯 정성스럽게 가꾼 가정이 있어 부부의 울타리는 언제나 따뜻하다.
“연애 시절 함께 다녔던 오페라하우스에서 구입한 오페라글라스, 처음 만났을 때 했던 타이, 처음 빌려줬던 악보 등 그간 주고받았던 마음과 추억들을 모아놓고 생각날 때마다 함께 꺼내 봐요. 그것들을 다시 되새기며 처음 마음을 잊지 않는 것도 저희 부부가 울타리를 튼튼하게 지켜나가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