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로열 웨딩 열풍을 일으켰던 윌리엄과 케이트의 결혼식이 수많은 이슈를 남기고 지나간 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것은? 단연 케이트 미들턴의 ‘웨딩드레스’일 것이다. 그만큼 영국 왕실 신부들이 입는 웨딩드레스는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각인되어 로열 웨딩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다. 그리고 소재, 디자인, 디테일 등 모든 것이 세계 신부들의 웨딩 스타일 변천사에 중요한 부분이 된다. 패션과 디자인, 웨딩 산업에 역사적인 사건이라 할 만한 세 사람의 로열 웨딩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엘리자베스 2세,
클래식한 로열 웨딩의 정수
6월 초, 영국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0주년(Diamond Jubilee)을 맞아 들썩였다. 영국 국민은 빅토리아 여왕 이후 115년 만에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맞은 그녀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축하를 보냈다. 영국인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47년 11월 20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필립 공과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신부는 왕실 드레스 제작자였던 노먼 하트넬이 보티첼리의 작품 <라 프리마베라>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아이보리색 더치스 새틴 소재에 1만9000개의 크리스털과 작은 진주로 장미, 별꽃, 옥수수 잎 모양 장식을 만들어 섬세하게 수놓은 드레스는 전쟁이라는 고통 뒤의 성장과 재탄생을 표현한 것이라고. 갖가지 꽃 모양의 디테일은 신부가 들고 있는 꽃을 아래로 늘어뜨린 형태의 풍성한 부케와 어우러지며 로맨틱함을 극대화했다. 그녀의 웨딩드레스는 특히 소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대부분의 실크가 중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에서 수입되던 상황에서, 그녀는 영국의 유일한 실크 제작 농장에 드레스 원단 제작을 맡겼던 것. 여왕의 실크 드레스 탄생 이후, 전통 기법으로 생산하는 실크 소재가 고급 원단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그리고 메리 왕비가 빅토리아 여왕이 준 목걸이로 제작해 그녀에게 물려준 티아라와 두 줄의 진주 목걸이가 기품 있고 클래식한 로열 웨딩 스타일을 완성시켜주었다.
(왼쪽)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47년, 크리스털과 진주로 갖가지 꽃 모양 장식을 만들어 섬세하게 수놓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다.
고 다이애나 비의 웨딩드레스는 부풀린 소매와 치마, 긴 트레인 등 동화 속 공주님을 연상시키는 로맨틱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다이애나 비, 로맨틱한 동화를 완성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로열 웨딩드레스는 고 다이애나 비의 것이다. 1981년 7월 29일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과 버킹엄 궁전에서 진행된 예식에 ‘신데렐라’ 다이애나는 4륜 대형 마차를 타고 나타났다. 세기의 결 혼식을 지켜보기 위해 끝도 없이 늘어선 사람들은 ‘패션 역사상 가장 신비에 싸인 드레스’라 불리던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고대하고 있었다. 수줍게 마차에서 내린 다이애나는 아이보리색 타프타 실크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1만여 개의 진주로 장식된 화려한 드레스는 한껏 부풀린 소매와 풍성한 치마, 무려 8m나 되는 긴 트레인과 베일로 마치 동화 속 공주가 현실로 넘어온 듯한 모습이었다. 앞머리가 자연스레 흐르는 금발의 커트 머리에는 스펜서 가문의 다이아몬드 티아라가 얹어져 세기의 신부를 아름답게 빛냈다. 로맨틱의 극치를 보여준 이 웨딩드레스는 결혼식이 끝나고 8시간 만에 런던 거리에 카피 드레스가 내걸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1980~1990년대 웨딩드레스 스타일에 큰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세계의 눈을 영국으로 집중시켰던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 현대판 신데렐라로 등극한 신부 케이트는 전통과 현대미를 결합한 웨딩드레스로 신세대 왕비다운 감각을 뽐냈다.
케이트 미들턴, 전통과 현대미의 결합을 보여주다
포스트 다이애나 비라 불리며 결혼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케이트 미들턴. 이런 관심은 그녀를 패셔니스타로 등극시켰다. 입는 옷마다 품절되고, 모조품까지 등장하는 상황에서 과연 그녀가 어느 디자이너의 어떤 웨딩드레스를 입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혼식 당일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친 그녀의 웨딩드레스는 2011년 4월 29일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알렉산더 맥퀸의 수석 디자이너 사라 버튼의 작품이었다. 그녀는 전통과 현대미가 예술적으로 결합된 드레스를 원했던 케이트의 의견을 반영해 드레스 제작에 들어갔다. 그 결과 어깨와 팔을 레이스로 가린 단아한 아이보리색 실크 드레스가 탄생한 것이다. 영국을 상징하는 네 가지 꽃인 엉겅퀴, 수선화, 토끼풀, 장미를 한 땀 한 땀 수놓은 레이스 장식이 백미. 이 레이스로 상체를 우아하게 덮은 대신, 네크라인을 브이 자로 깊게 파 현대적이면서도 고혹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흡사 모나코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를 연상시키기는 모습이었다. 드레스에 매치한 소품들도 화제가 되었다. 트레인은 2m70cm로 고 다이애나 비의 1/3 정도 길이밖에 되지 않았고, 그동안 왕실 예식에서 볼 수 없던 쇼트 베일은 신세대 왕비다운 선택이었다. 이외에 영국 왕실 전통에 따라 여왕이 신부에게 물려준 까르띠에 ‘헤일로’ 티아라, 케이트의 집안을 상징하는 떡갈나무 잎 모양 다이아몬드 귀고리, 백합과 히야신스로 만든 부케까지 전체적으로 심플한 소품들을 선택해 웨딩드레스가 더욱 부각되는 효과를 주었다. 한편 신부가 직접 했다고해 화제가 됐던 메이크업은 눈썹과 속눈썹을 진하게 하고 볼터치를 강조해 이목구비가 뚜렷한 영국 미인의 아름다움을 부각시켰다. 또 헤어스타일은 평소의 긴 갈색 머리에 컬을 넣고 늘어뜨려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이날의 웨딩 스타일링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부터 다이애나 비, 케이트 미들턴까지 그들의 웨딩은 모두 ‘로열 웨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처럼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된 의미와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변치 않는 한 가지. 세 사람 모두 전 세계 여성들에게 로열 웨딩에 대한 꿈과 환상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엘리자베스 2세·다이애나 비·케이트 미들턴
그들만의 로열 웨딩 스타일 계보
로열 웨딩에서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그들의 전통과 스타일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이다. 역사에 두고두고 기억되는 기념물이자, 전 세계 신부들의 웨딩 스타일에 영향을 주는 강력한 트렌드가 되기도 한다. 엘리자베스 2세부터 다이애나 비, 케이트 미들턴까지 영국 왕실 신부들의 닮은 듯 다른 로열 웨딩 스타일을 되짚어봤다.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12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