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주례사의 핵심은 ‘자존심을 포기하라’입니다.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들은 서로가 몸을 벌거벗듯이 마음의 옷도 벌거벗는 부부들입니다. 마음의 옷이란 자존심과 체면의 옷이라는 것입니다. 자존심과 체면은 사회생활에 필요할지는 몰라도 부부 사이에는 정말 필요 없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현명한 부부들이었습니다.
이석기(교육자) 주례사에 등장하는 선배 부부의 이야기는 주례를 들으며 자칫 흩어지기 쉬운 신랑 신부의 집중도를 순간적으로 높여준다. 중학교 교장을 지내고 수많은 이들의 주례를 선 그의 주례사는 ‘서로 존중하세요’ 하는 식의 ‘공자님 말씀’이 아니라 현실적이면서도 유익하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2 주례를 서기 전에 나도 간략하게나마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나를 교훈으로 삼으라는 뜻으로 주례를 허락했습니다. (효자손에 낡은 천을 감아 만들었다는 ‘솔로용 로션 바르기 기구’를 들어 보이며) 이런 발명품이 필요 없도록 함께 오래 살길 바라요. 타의 모범이 되지 않는 나한테 다시는 주례 맡기지 마세요.
조영남(방송인) 두 번 이혼한 경험이 있는 그가 2007년 1월 ‘이경실의 재혼식’에 주례를 섰다. ‘반면교사’를 자청하면서. 하객들은 웃으며 공감했다.
3 오늘 이 순간부터는 덕 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무얼 해줄 수 있을까, 내가 그래도 저분하고 살면서 저분이 나하고 살면서 그래도 좀 덕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줘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만 생각하면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법륜(스님)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을 펴내며 대중에게 더욱 널리 알려진 법륜 스님이 이름나게 된 이유가 된 주례사. ‘덕 보려 하지 말고 덕을 봤다고 주는 사람이 되라’는 내용에 대한 공감과 주례를 선 이가 스님이라는 이유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사 인터넷에 널리 퍼지기도 했다.
4 부부 생활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참는 것입니다. 부부가 같이 살다 보면 화나는 일도 있고 마땅치 않은 일도 생깁니다. 그때 화를 내고 싸우고 시비하지 말고 참아야 합니다. (중략) 그리고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부가 살아가면서 법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하려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아내가 또는 남편이 단호하게 반대해야 합니다.
김대중(前 대통령의 주례사) 평소 주례를 서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하던 그이지만, 1997년 한 번의 예외를 두었으니 바로 국악인이자 연기자인 ‘오정해의 결혼식”. 배우 오정해는 이를 위해 축가도 취소하고 주례사를 경청했으며 지금까지 주례사의 토씨 하나하나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5 부부는 두 발 자전거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두 발 자전거는 파트너 둘이 양쪽 발로 힘차게 폐달을 밟아야 앞으로 잘 나아갑니다. 핸들을 잘못 돌리면 둘 다 쓰러지게 되고 항상 뒷바퀴가 앞바퀴를 따라가지요. 이것은 존경과 질서를 말하며 균형 감각을 의미합니다. 가정에서 부부간의 균형 감각. 이보다 좋은 단어도 없겠지요?
박성교(한국예절대학원 교수) 결혼으로 하나가 된 부부는 ‘2인3각’에 흔히 비유되곤 한다. 평소 예의범절을 다른 이들에게 가르치며 주례를 많이 서본 이답게 ‘두 발 자전거’를 예로 들어 협력과 존중, 균형감각을 설명했다. 좋은 비유는 평이한 설명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다. 바로 이 주례사처럼.
6 이번에 남아공 월드컵이 있으니, 신랑 신부가 나와 같이 응원해야 합니다. 그 조건으로 주례 보는 거죠. 기쁨은 더하고 슬픔은 빼고 행복은 곱하고 사랑은 나눕시다. 어젯밤 이거 외우느라 애먹었어요. (중략) 내 주례가 기분 나빴다면 손을 들고, 괜찮았다면 박수 쳐주세요.
김흥국(방송인) 개그맨과 헷갈릴 정도로 유머 감각이 탁월한 가수이자 진행자로 유명한 그답게 주례사에도 유머가 빠지지 않는다. 주례를 왜 그렇게 보냐는 지적에 “내가 주례를 잘 보면 계속 연락이 올까봐”라는 변명을 하기도 하고, 웃는 신랑을 보며 “이 사람아 웃으면 안 되지. 주례를 뭐로 보는 거야”라고 해 하객들을 웃게 만들기도 한다. 졸음을 부르는 주례사와 완전 다른 행보를 보이는 셈.
7 영화는 활동사진에서 시작해 입체 영화로 발전해갔지만, 거꾸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로 시작해 채플린 시대의 흑백 무성영화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젊음의 현란한 색채는 하나둘 사라지고 수입은 반 토막 나고 자유롭던 생활은 가정이라는 굴레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신랑이 영화인이니 묻겠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어령(문인, (前 문화부장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성이자 작가, 전직 장관 등 타이틀도 화려한 그이의 주례사는 일반인의 기대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2010년 5월 ‘장동건・고소영 커플의 결혼식‘에서 그는 ‘결혼하면 자유를 잃지만 평생의 반려자를 만난다’는 주제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명문장을 남겼다.
8 연규진 씨의 부탁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연기자는 외줄을 타는 광대와 같습니다. 한눈을 팔면 줄에서 떨어지는 광대처럼 연기자도 추락하게 되는 것이죠. 연정훈ㆍ한가인 커플이 연기자 부부인 만큼 연기라는 한곳을 향해 서로를 도우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최불암(연기자) 2005년 4월 연기자 ‘연정훈과 한가인의 결혼식’ 주례는 이들의 직업과 결혼을 연관시킨 언어유희로 최불암의 인생에 대한 통찰력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연기자에 대한 외줄 타기 광대라는 재치 있는 비유로 삶과 연기에 대한 그의 연륜과 통찰력이 보인다.
9 행복의 근원은 사랑에 있습니다. 부부가 합심하여 노력하고 신뢰할 때 진정한 사랑이 움트고 그 속에 행복과 성공이 창조되고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건강하고 봉사하는 마음, 타인에 대한 배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면 언제나 건강이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한세용(한국예절대학원원장) 누구나 사랑과 행복을 꿈꾸며 결혼하지만, 이 둘의 상관관계를 아는 이는 많지 않은 세태.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신혼부부를 위해 행복이 어디서 연유하는지 그 근원을 밝히는 그의 주례사는 기본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면서도 이해가 쉬워 신혼부부와 하객들의 귀를 잡아끄는 힘이 있다.
10 많은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 재테크에 유념하고, 사업은 자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20년 후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 부부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프로선수와 미스코리아는 자신이 부각되고, 경쟁이 치열한 분야이니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며 져 주는 데 익숙해지세요.
허구연(야구 해설의원) 평소 입심 좋기로 유명한 허구연 해설위원은 후배 야구선수들의 주례로도 인기 높다. 2010년 12월 ‘빅초이 최희섭 선수와 미스코리아 출신 김유미의 결혼식’ 주례사는 하객으로 참석했던 많은 야구선수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11 몇 해 전 저는 지나가는 말로 신랑에게 다음에 주례를 서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신랑에게는 지나가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삶에 대해 엄숙했고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저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맹세를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은 세상을 향해 띄우는 가장 소중한 약속입니다.
주철환((前 PD, OBS 경인 TV 대표이사)
이름난 PD였고 케이블 방송사 사장이었던 그는 자신의 저서 <사랑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에서 후배의 주례를 선 경험을 밝혔다. ‘약속’의 소중함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평소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어서, 왜 많은 연예계 후배들이 그에게 주례를 서달라고 부탁하는지 이해될 정도.
12 Thou shalt give honor not only to your father and mother, but to those who become your father-in-law and mother-in-law. Wise is the husband and wife who does not take it upon himself or herself to find fault with those who are related to their spouse. 당신의 부모를 공경하듯 배우자의 부모도 공경하세요. 지혜란 허물을 배우자에게서 찾지 않는데 있습니다.
최성호 (전 미국 시카고한국총영사관 영사) 주례사가 따로 없는 서양인에게 한국 결혼식의 주례사는 흥미롭다. 다만 이해할 수 없을 뿐. 미국 시카고한국총영사관 영사를 지낸 자신의 이력을 바탕으로 한국인과 외국인의 결혼에 주례도 많이 서고 있다. 이 주례사는 마태복음 19장 19절을 응용한 것으로 결혼 당사자뿐 아니라 배우자의 가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강조했다.
13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닥친다면 호랑이의 용맹하고 날쌘 기상으로 박차고 일어나시고, 촘촘한 그물망의 그물코에 엮였다면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나간다는 승풍파랑의 지혜로움으로 극복하시고, 어지럽고 흙탕물 같은 세속에서도 맑고 향기로운 연꽃처럼 모범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시고,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큰 인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정태환(SBS TV 방송위원, 남서울대학교 교수) 일반적으로 주례사가 좋은 말씀이지만 졸린다는 게 문제. 한국산업인력개발원 부원장으로 많은 주례를 서 본 경험이 있는 정태환 위원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호랑이’ ‘연꽃’ 같은 구체적이면서도 쉬운 단어를 섞어 풀어 주례사의 흥미를 돋운다.
14 결혼이란 하늘에서 맺어준 인연이 땅에서 완성되어지는 것이죠. 요즘 예식장마다 결혼 축가로 많이 불리는 김동규ㆍ금주희 씨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곡 아시나요? 노랫말이 정말 좋아 그 일부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걸, 사랑하는 이유 ,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김은배(경북대학교 교수) 좋은 주례사의 조건에는 분명 듣기 편하고 금세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 들어 있다. 평생을 교육자로 산 이답게 김은배 교수의 주례사는 쉬우면서도 감동적이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노래의 한 구절을 예로 들고, 노랫말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 듣는 이가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15 메니페스토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메니페스토는 정치인이 선거에서 후보로서 내놓은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살펴보고 당선 후에는 그 선거 공약을 얼마나 잘 지켜나가는지, 그리고 지켜나가도록 하는 운동입니다. 결혼에서도 약속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랑이 앞으로의 결혼 생활에서 지켜나갈 공약은 무엇입니까?
강지원(변호사) 사법고시 수석 합격(1976년), 판사, 변호사, 그리고 한국 메니페스토 실천본부 상임대표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자신의 화려한 이력답게 주례사 역시 선거 공약과 연관지어 이야기를 풀어갔다. 결혼할 때 약속하는 것들을 선거 공약에 비교한 셈. 결혼은 신성한 약속이라는 의미와도 상통해 듣는 이에게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16 웬만해서는 부부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싸우더라도 하루를 넘기지 말아야 하죠. 부부싸움 후 화해를 위해 필요하다면 야한 동영상을 봐도 괜찮습니다.
이순재(연기자) 2010년 6월 연기자 ‘변우민 결혼식’에서 선배 연기자이자 인생의 선배로서 부부싸움 후 화해하는 방법을 주례사에 담았다. 이 주례사가 오래도록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주례사 속에 자신의 별명을 응용했기 때문. 그때 이순재는 시트콤 <거침없는 하이킥>에 출연해 ‘야동순재’라는 별명을 얻었고 폭넓은 연령층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주례사 속 위트가 그의 인기 비결을 알려준다.
17 결혼은 거친 바다입니다. 행복의 곶감을 빼먹는 게 아니라 노력해서 곶감을 만들어가는 것이며 적당한 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짝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중략) 신혼여행을 다녀와 하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해야 하지만, 나한테는 안 해도 됩니다. 다만, 이 양복이 좀 오래됐어요.
이경규(방송인) 강호동의 주례를 맡으며 일약 유명 주례자가 된 이경규. 2006년 11월 강호동 결혼식에서 “양복이 오래되었다”는 말로 하객들의 폭소를 유도하더니, 2008년 이윤석의 결혼식에서는 “면세점 앞을 지날 땐 나를 꼭 기억하라”고 주문해 자신만의 독특한 주례사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18 너를 보니 네 아비 생각이 난다. 부디 잘 살아라.
김구(독립운동가)
요즘은 주례사 없는 결혼식도 종종 있지만, 김구 선생의 주례사처럼 짧은 한 구절이 주는 강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울림은 따를 수가 없다. 이 주례를 들은 하객이 시계를 봤더니 5초 걸렸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기억에 남을 명문장이 감동을 주는 주례사 18
Message from the Heart
주례사라면 으레 형식적인 말씀이어서 하객들은 건너뛰거나 가끔 졸기도 하지만, 신랑 신부에게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주례사만큼 좋은 내용도 없다. 그래서 촌철살인처럼 빛나는 주례사를 가려 모았다. 좋은 주례사 속에는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는 한 구절이 담겨 있다.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11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