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 식장에 들어가는 케이트 미들턴과 그녀의 아름다운 들러리로 화제를 모은 동생 피파 미들턴. 현대미와 전통이 공존하는 신세대 왕비의 드레스와 몸매를 드러낸 피파의 드레스 모두 사라 버튼의 작품이다.
AM 10:15 신랑 윌리엄 왕자, 식장으로 향하다
이날 오전 드디어 신랑 윌리엄 왕자가 영국 왕실의 저택인 클래런스 하우스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들러리인 동생 해리 왕자와 함께 벤틀리 승용차를 타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하기 위한 것. 이때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윌리엄 왕자의 의상이다. 그가 공군 헬기 조종사로 복무 중이기 때문에 푸른색 공군 정복을 입을 것이라는 추측을 깨고, 붉은 코트에 블랙 팬츠의 육군 대령 복장으로 나타났기 때문. 별이 달린 푸른 어깨띠, 공군 날개 모양의 금색 휘장,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재위 50년을 기념하는 금메달 등으로 장식된 붉은 군복은 ‘영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김은 물론 턱시도를 대신할 결혼 예복으로도 손색없을 만큼 화려했다.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에서 로열 웨딩 생중계를 담당한 디자이너 하상백은 깊은 감동을 받은 듯 “윌리엄 왕세자의 대담한 컬러 매치가 돋보이는 의상이 곧 남성복 컬렉션에도 영향을 줄 것 같다”고 평가했을 정도.

1 20억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은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웨스트민스터 사원 통로를 귀여운 화동과 들러리인 피파&해리 왕자가 따르고 있다.
2 웨스트민스터 사원 전경. 1939년 필립 공과 엘리자베스 여왕이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기도 하다.
식이 시작되기 10분 전, ‘세기의 드레스’ 베일을 벗다
결혼식 당일까지 웨딩드레스 디자인과 디자이너를 철저히 비밀로 한다는 영국 왕실의 전통에 따라 끝까지 특급 비밀에 부쳐졌던 케이트 미들턴의 웨딩드레스는 이날 10시 50분경, 그녀가 결혼 전야를 보낸 고링 호텔에서 나와 롤스로이스 팬텀Ⅵ에 올라타면서(고 다이애나 비는 마차를 타고 식장으로 향했으나, 캐서린은 롤스로이스를 타 이 전통을 깼다) 드디어 세상에 공개되었다. 많은 이의 예상대로 요절한 영국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인 사라 버튼의 작품. ‘버튼의 드레스라면 화려하고 파격적일 것’이라는 예상을 빗나가고, 어깨와 팔을 레이스로 가린 단아한 아이보리색 실크 드레스였다. 캐서린은 전통과 현대미가 예술적으로 결합된 드레스를 원했고, 사라 버튼이 드레스 작업을 하는 내내 긴밀하게 참여했다고. 드레스의 백미는 영국을 상징하는 네 가지 꽃인 엉겅퀴, 수선화, 토끼풀, 장미를 자잘하게 수놓은 프랑스산 레이스 장식. 상체를 덮어 우아함을 강조했으며, 왕년의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모나코의 레니에 3세 왕자와 결혼할 때 입은 드레스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네크라인은 브이V 자로 깊게 파 답답함을 피하고, 마치 블라우스를 보는 듯 현대적인 느낌을 더한 것이 포인트. 상체는 코르셋처럼 몸에 딱 맞게 디자인해 케이트 미들턴의 날씬한 상체가 돋보였으며, 치마는 엉덩이 부분을 부풀리고 넓게 퍼지는 스타일로 고전미가 넘쳤다.
고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 당시 끝없이 긴 드레스 뒷자락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케이트 미들턴의 트레인 역시 큰 관심사였는데, 길이는 270cm 정도로 고 다이애나 비의 1/3 정도 길이밖에 되지 않았다. 한편 그녀의 들러리를 선 여동생 피파 미들턴도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순식간에 인터넷 스타로 떠올랐다. 웨딩드레스 자락을 잡고 따르는 피파의 뒤태가 화면에 잡히자 사람들은 이제 ‘피파가 영국에서 가장 멋진 미혼녀’라는 칭찬을 쏟아냈다고.


결혼식을 마친 후 퍼레이드를 한 커플. 이 행렬은 로열웨딩 루트를 따라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떠나 버킹엄 궁전까지 15분간 이어졌다. 그들이 탄 마차는 1902년식 스테이트랜도.
웨딩드레스만큼이나 화제가 된 신세대 왕비의 소품들
케이트 미들턴이 고링 호텔에서 처음 모습을 보였을 때, 신부의 얼굴 전체를 덮어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더했던 아이보리색 베일은 그동안 왕실 예식에서 볼 수 없었던 짧은 베일. 기품 있는 신세대 왕비다운 선택이었다. 베일을 고정한 티아라는 1936년 제작된 까르띠에의 ‘헤일로’이며, 헤일로는 영국 왕실 전통에 따라 여왕이 신부에게 빌려주는 물건. 목걸이는 하지 않았으나, 물방울 모양의 드롭 스타일 귀고리로 심플한 세련미를 더했다. 이 귀고리는 로빈슨 팰햄이 제작한 것으로 케이트 미들턴의 부모가 선물했다고. 그녀의 집안을 상징하는 떡갈나무 잎을 다이아몬드로 형상화한 것이다. 윌리엄 왕자가 끼워주는 순간, ‘혹시 안 들어가나?’ 싶을 만큼 신부의 손가락에 꽉 끼어 전 세계를 숨죽이게 했던 결혼반지는 심플한 금반지였다. 이 반지는 영국 보석 업체인 와츠키가 제작한 것으로, 여왕이 약혼식 후 하사한 웨일스산 금으로 만든 것. 1865년 창업한 와츠키는 대대로 왕가의 예물을 만들어온 회사다.
한편 이날 신부가 직접 할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았던 메이크업은 눈썹과 속눈썹을 진하게 하고 볼터치를 강조해 이목구비가 뚜렷한 영국 미인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또 소프트 컬을 넣어 반 묶음 스타일로 연출한 그녀의 웨딩 헤어는 평소 모습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아 그녀가 확고한 자기 스타일이 있는 패셔니스타임을 증명하기도 했다.

(왼쪽) 찰스ㆍ다이애나 커플과 비교하며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윌리엄과 케이트 미들턴의 발코니 키스. 옆에 양쪽 귀를 막은 화동의 얼굴 표정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열광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오른쪽) 반지를 교환하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커플.
로열 웨딩에 걸맞은 하객 패션도 화제
영국 왕족을 비롯한 세계 50여 개국 정상 등 하객 1900명은 오전 8시 15분부터 식장에 입장해 신랑 신부를 기다렸다. 스웨덴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 71세의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 모나코 고 그레이스 켈리 왕비의 며느리인 샤를렌 위트스톡 왕비 등 쟁쟁한 왕족들이 대거 모였으니 세계적인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 부부는 일반 하객석에 앉았을 정도. 이 ‘세기의 결혼식’에 온 왕실 가족과 손님들은 여성은 각양각색의 모자로, 남성은 짙은 감색이나 먹색 슈트를 입고 타이를 맨 차림에 조끼까지 입어 왕실 예식 패션의 전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특히 모자 경연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하게 등장한 헤드피스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영국 왕실 결혼식에 참석하는 여성들은 모자를 쓰는 것이 전통이라고. 단순한 멋이 아닌 ‘예의’인 것이다.
이날 귀빈들이 쓴 모자 대부분은 왕실이 선호하는 모자의 마술사 필립 트레이시가 디자인한 모자로 그가 만든 모자만 100여 개가 등장했다. 미니버스를 타고 등장한 로열패밀리의 옷차림에서는 클래식한 라인과 다채로운 컬러의 향연이 돋보였다. 패션 하우스의 따끈따끈한 신상을 그대로 입기도 하고 응용하기도 하면서 트렌디함을 잃지 안 되, 헤드피스와 함께 박물관의 작품 같은 느낌을 선사해 ‘클래식 포에버’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뭐니 뭐니 해도 이날의 베스트 드레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85세라는 나이를 잊게 할 만큼 화사한 옐로 코트에 옷과 같은 색 모자를 쓰고 흰색 토트백을 들어 유행을 초월한 고급스러운 패션을 선보였다. 하늘색 투피스를 입은 케이트 미들턴의 친정어머니인 캐럴과 시어머니인 카밀라 콘월 공작부인의 한치의 양보 없는 우아한 패션 역시 눈길을 끌었다.

1 피로연에서 사라 버튼의 드레스를 입은 케이트 미들턴.
2 과감한 컬러의 의상으로 시선을 모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3 블랙 턱시도에 영국 훈장으로 포인트를 준 데이비드 베컴과 미니멀 룩으로 찬사를 받은 빅토리아 베컴 부부.
각 부문 세계 최고가 준비한 결혼식은 퍼레이드로까지
오전 11시, 고딕 양식으로 지어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드디어 세기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사원 통로는 여섯 그루의 단풍나무를 비롯해 총 5만 파운드(8900만원)를 들여 심은 나무 덕분에 숲처럼 쾌적한 느낌. 결혼식에 웅장한 분위기를 더한 음악 연주는 90년 역사를 자랑하는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공식 사진은 2005년 찰스 왕세자와 카밀라의 결혼식 사진 촬영은 물론 대처 총리, 빅토리아 베컴 등의 유명 인사 전담 포토그래퍼로 통하는 휴고 버난드가 맡았다. 시종일관 의연하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잃지 않으며, 주례를 맡은 영국 성공회 수장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 앞에서 결혼 서약을 마친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 커플은 사륜마차에 올라타고 가두 행렬을 시작했다. 이 새로 탄생한 부부를 보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 거리를 가득 메우며 몇날 며칠 노숙도 불사한 이들에게 가장 행복했을 순간. 이때 사용한 마차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국빈을 맞이할 때 쓰는 1902년 제작된 ‘스테이트 랜도’로 1981년 찰스 왕세자와 고 다이애나 비도 이 마차를 탔었다.
결혼식 후 퍼레이드가 이어진 로열 웨딩 루트는 결혼식장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떠나 국회의사당 광장-화이트홀(영국 총리 관저, 국방부 등 정부 기관이 밀집한 거리)-다우닝가(총리관저)-더몰(트라팔가 광장에서 버킹엄 궁까지 가는 약 1km의 대로)을 지나 더몰 거리 끝에 위치한 버킹엄 궁에 도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왼쪽) 신랑의 어머니로서 혼주 역할에 적극 나선 카밀라 콘월 공작 부인.
(오른쪽) 영국 왕실 서열 6위의 유지니 공주와 윌리엄의 사촌 여동생인 베아트리스 공주.
결혼식의 하이라이트, 발코니 키스
신랑 신부를 태운 마차가 버킹엄궁으로 들어가고 1시간이 지난 12시 25분경, 버킹엄 궁의 2층 발코니에서 결혼식의 대미를 장식한 낭만적인 이벤트가 펼쳐졌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가 30년 전 그랬던 것처럼 둘이 발코니에서 키스한 것. 보다 과감한 키스를 기대했지만 키스는 가볍게 끝났고, 첫 키스가 너무 짧다는 군중의 성화에 못 이긴 부부는 좀 더 긴 입맞춤으로 답해 결혼식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후 런던 거리 2000여 곳에서 길거리 파티가 열렸으며, 윌리엄 왕세손과 캐서린 빈(평민 케이트 미들턴은 결혼과 동시에 이제 영국 윈저 왕가의 캐서린 왕세손 빈으로 다시 태어났다. 친구나 가족이라도 공식 석상에서 그녀를 애칭인 케이트로 불러선 안 되며, 본명인 캐서린을 써야 한다)도 최측근 300명만 초대해 신세대다운 피로연 파티를 즐겼다고. 이때 윌리엄은 블랙 턱시도에 나비넥타이를, 캐서린은 비즈 벨트가 돋보이는 화이트 드레스에 볼레로를 입어 우아함을 한껏 뽐냈다. 이 드레스 역시 사라 버튼의 작품. 결혼식 환영 리셉션은 데이비드 베컴부부의 결혼식 및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연회 등도 기획한 경험이 있는 세계적인 파티 기획자 페레그린 암스트롱 존스가 맡았으며, 리셉션에 쓰인 케이크는 영국의 유명 케이크 디자이너인 피오나 케언스가 제작했다.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과일 케이크가 전통이지만 올해는 윌리엄의 요청으로 왕실 레서피를 따른 초콜릿 비스킷 케이크도 함께 준비했다.

윌리엄과 캐서린의 결혼을 계기로 찰스와 다이애나의 결혼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1981년 7월 29일은 윌리엄 왕자의 부모인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 스펜서의 결혼식이 치러진 날. 영국의 42대 국왕이 될 찰스와 영국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인 다이애나의 결혼은 영국 황태자의 결혼이라는 것 이외에도 3세기 만에 처음으로 영국 여성이 왕세자비가 된다는 사실에 많은 화제를 낳았으며, 세계 100여 개국 약 7억의 인구가 TV를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세인트 폴 성당에서 진행되었다.
성당 앞에는 한여름의 무더위도 잊은 듯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의 사람들이 모였고, 20세기 동화의 주인공인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상앗빛 타프타 실크 웨딩드레스를 입고 수줍게 마차에서 내렸다. ‘패션 사상 가장 신비에 쌓인 드레스’라며 기대를 모았던 다이애나 비의 웨딩드레스는 1만여 개의 진주 장식, 9000파운드(약1억8000만원) 상당의 실크 소재 사용, 무엇보다 8m나 되는 긴 트레인이라는 다양한 기록을 갖고 있다. 긴 베일은 웅장함을 더했으며, 앤티크한 레이스를 믹스하고 커다랗게 부풀렸다 리본으로 마무리한 소매 장식은 그야말로 ‘동화 속 공주님의 드레스’를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 당시 신부도 감당할 수 없는 길이와 과도하게 부풀린 디자인에 혹평을 퍼부었던 기자들도 “그녀가 입었기에 아름다웠다”고 칭송할 정도로 아름다웠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엘리자베스 엠마누엘의 작품으로 이 숨 막힐 듯 로맨틱한 다이애나비의 웨딩드레스는 결혼식이 끝나고 8시간 만에 런던 거리에 카피 드레스가 내걸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1980~1990년대 웨딩드레스 유행을 주도하는데 크게 한몫했다. 이때 그녀가 착용한 티아라는 스펜서 백작 가문의 것으로 이후 공식 석상에 참석할 때도 자주 애용했다.
(오른쪽)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긴 트레인과 베일을 썼던 고 다이애나 비. 윌리엄과 캐서린의 결혼식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추억했다.

1 차례대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공
2 다이애나 비와 찰스 황태자
3 윌리엄과 캐서린의 로열 웨딩 모습.
살아 있는 전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웨딩드레스는?
손자인 윌리엄의 결혼식에 연한 개나리색 투피스를 입고 등장해 베스트 드레서 반열에 올랐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그녀의 결혼식은 1947년 11월 20일 윌리엄과 같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렸으며, 웨딩 가운은 1938년 왕실 드레스 제작자로 임명된 노먼 하트넬에게 의뢰했다. 그는 진주를 이용해 꽃 모양의 수를 놓는 등 보티첼리의 작품인 <라 프리마베라(봄)>에서 영감을 얻은 웨딩드레스를 선보였다. 풍부한 아이보리색 더치스 새틴에 반짝이는 크리스털과 진주로 수를 놓아 전쟁이라는 고난 뒤의 성장을 상징화한 것이 특징. 티아라는 1919년 메리 왕비를 위해 제작된 것을 착용했다.
1936년 메리 왕비는 이 티아라를 엘리자베스 왕비에게 주었고, 엘리자베스 왕비는 1947년 엘리자베스 공주의 결혼식에 빌려준 것. 이처럼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 공, 찰스 황태자와 고 다이애나 비, 윌리엄 왕자와 신세대 왕비 캐서린으로 이어진 영국 왕실의 웨딩은 시대도 스타일도 다르지만 세계인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오래도록 회자될 ‘꿈의 결혼식’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