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녀는 부녀자 수식首飾의 하나로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으나 존비의 차별이 심하던 옛날에 귀족은 금은주옥으로 된 비녀를, 서민은 나무, 뿔, 뼈 등으로 만든 비녀를 꽂았다. 비녀가 다양하게 발전한 것은 영조 이후의 일이다. 가채가 쪽으로 바뀌면서 가채에 치중하던 사치는 비녀로 모양을 달리해 다채로운 형태로 바뀐 것.
비녀는 유행을 따라 오늘 하던 것을 내일 그만두는 것이 아니고 한 번 만들어놓으면 여인들의 손길이 쌓여 길들고 아끼고 아껴 못 다 꽂으면 가장 사랑하는 딸이나 며느리에게 물려주기도 한 귀한 물건. 그러므로 그저 하나의 장신구로서가 아니라 가보로 여겨지고 여인들의 심적인 재산이 되기도 하였다. 지금 내려오는 유물 중 비녀를 보면 모양은 비슷하면서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는 점은 옛날의 장인들이 다량의 상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한 작품을 예술품으로 다루어 온갖 정성을 다하고 얼을 담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비녀야말로 장신구인 동시에 예술품이며 그 소재와 종류도 풍부하여 용잠, 봉잠, 매죽잠, 화엽잠, 초롱잠, 산호잠, 석류잠, 진주잠 등 헤아릴 수 없으며 크고 긴 것은 의식용으로 작고 짧은 것은 상시 꽂았다. 사진 속 비녀는 서울에서 유일한 옥공예 무형문화재 엄익평 씨의 작품으로 산호와 금을 이용한 산호잠과 나비 모양 떨철이 달린 영락잠 두 가지다. 영락잠은 궁중이나 반가에서 의식용으로 사용되던 비녀 중 가장 화려한 것으로 떨철을 달아 움직일 때마다 살랑살랑 흔들리도록 하고 산호로 장식하며 칠보로 꾸민 것이 대부분이나 이 영락잠은 칠보가 아닌 물총새의 깃털을 하나하나 붙여 장식해 그 귀함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