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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 디자이너가 풀어놓은

내 인생 최고의 영화 속 웨딩드레스 이야기

영화는 누구나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오락거리 가운데 하나. 하지만 같은 영화를 봐도 관심사에 따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따로 있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라면? 분명 결혼식 장면에 눈길이 갈 것이다. 그래서 궁금하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4인의 잊지 못할 영화 속 웨딩드레스 이야기를 들어본다.


(왼쪽) 정소연 웨딩루이즈 화니 페이스
내가 디자인하는 정소연 웨딩루이즈의 드레스는 여성스러움을 기본으로 과하지 않게 럭셔리, 큐트, 엘리건트 등의 다양한 느낌을 더해 잔잔한 사랑스러움을 표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런 나의 뮤즈를 말하라면 단연 오드리 헵번. 오드리 헵번이라는 아이콘이 지닌 사랑스러움, 맑고 순수한 느낌은 정소연 웨딩루이즈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번 인터뷰 제의를 받았을 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녀의 영화들. 그 가운데 뽑은 <화니 페이스>는 평범한 아가씨 조(오드리 헵번 분)가 우연히 유명 패션지의 모델이 된다는 내용의 뮤지컬 코미디.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녀의 결혼식 장면은 한없이 천진난만한 분위기로 그려지는데, 헵번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부각한 발레리나 스타일의 웨딩드레스는 세월이 흘러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디자인에 가벼운 소재와 페미닌한 실루엣을 강조한 웨딩드레스. 헵번의 소녀답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 매력을 살리기 위해 과하지 않게 표현한 디자인 덕분이 아닐까?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언제 봐도 아름다운 드레스, 옷보다는 입는 이의 매력을 한껏 살려줄 수 있는 드레스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오른쪽) 로브마리에 박미영 여왕 마고
1994년은 파리로 유학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유학 초기였고 프레타 포르테냐 오트 쿠튀르냐의 기로에 서 있던 그때, 우연히 봤던 이 영화는 내가 정통 오트 쿠튀르 분야로 방향을 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붉은 피로 처참하게 물든 하얀 드레스를 입은 마고(이자벨 아자니 분)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가 인상적이었던 이 영화는 1572년 성바르톨로메오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 16세기 프랑스 왕실의 불륜과 권력 투쟁을 그린 것으로 결혼식 장면은 영화 첫 도입 부분에 나왔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가 열연한 마고의 성대한 결혼식 장면은 비록 정략결혼이라는 뒤 배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철저한 역사적 고증에 의한 화려한 디테일의 의상과 정략결혼이라는 갈등을 강렬한 레드&화이트 컬러의 대립으로 묘사한 것. 영화의 긴장감과 역사적인 비극을 상징적으로 끌어간 표현력이 탁월했다. 웨딩드레스 하나로 그렇게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표현할 수 있다니! 정통 오트 쿠튀르적인 섬세한 디테일과 화려한 컬러 등 유럽 정통 드레스에 대한 관심을 한층 높여주는 계기가 된 영화이기도 하다.



데니쉐르 by 서승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어렸을 때부터 고전 영화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주말의 명화>를 빼놓지 않고 봤는데,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클라크 케이블과 비비안 리의 열정적인 키스 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명대사를 남긴 마지막 장면 등 지금도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장면들이 많은데,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바로 허리가 22인치인 비비안 리가 침대 기둥을 잡고 코르셋을 조이던 장면이다. 아마 모든 여성들의 로망이 아닐지(난 지금 데니쉐르 드레스에도 코르셋 디자인을 많이 쓰고 있다). 사실 이 영화에 나오는 드레스들은 유럽 스타일이 아니라 미국 남부 시골을 배경으로 한 아메리칸 스타일이라 지금의 눈으로 보면 약간 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노예 계층부터 귀족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옷을 볼 수 있어 드레스 디자이너인 나에겐 큰 공부가 된다. 이 영화에서 결혼식 장면은 비비안 리가 첫 번째 남편과 결혼할 때로 아주 짧게 지나가지만 그때 입은 웨딩드레스는 지금 봐도 참 아름답다. 타프타 실크 소재로 소매가 양의 다리처럼 볼록하게 디자인되어 있는데 어깨에 들어간 과한 볼륨감만 줄인다면 클래식함과 아방가르드한 로맨틱함이 공존하는, 지금 입어도 손색없는 멋진 드레스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듯. 특히 이 웨딩드레스의 꽃 장식은 원단을 꽃의 볼륨과 입체감을 살리는 수작업으로 한 것인데, 이 기법은 최근 모니크 륄리에 같은 수입 드레스에서도 많이 보이는 것. 역시 유행은 반복되고, 고전은 위대하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케 한다.



르데빠르 박소영 섹스 앤 더 시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열혈 시청자였다. 네 명의 뉴요커 싱글 여성들이 성공과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우여곡절을 그린 내용에도 많이 공감했지만, 디자이너로서 더욱 즐거웠던 건 그들의 화려하고 시크한 패션 스타일. 그래서 영화까지 개봉되었다는 소식에 내심 설레며 극장을 찾았다. 영화에서 더욱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바로 사라 제시카 파커(극 중 캐리)가 잡지 <보그>의 화보 작업을 위해 웨딩드레스를 입고 촬영하던 장면부터. 오스카 드 라렌타, 베라왕, 디올, 비비안 웨스트우드 등… 당대 최고 디자이너들의 드레스를 한 편의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다니! 결국 캐리가 최종 결혼식 드레스로 결정한 것은 바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드레스였고 난 그 선택에 박수를 보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샤넬 다음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 그녀는 여성의 몸매 라인을 극대화하는 패턴과 입체 재단이 장기인데, 캐리가 입은 웨딩드레스가 바로 그 결정체였다. 금빛이 감도는 아이보리 컬러의 실크 드레스로 가슴 부분이 살짝 과장되면서 상체가 마치 코르셋처럼 피트되고 스커트는 벌룬 스타일로 풍성하게 퍼지는 드레스. 섬세한 디테일보다는 라인만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완성했다고나 할까? 내가 실제 결혼을 할 때 입고 싶은 드레스이기도 하면서 러블리한 라인을 선보이는 르데빠르 로맨틱 라인에 비해 심플하면서도 시크한 스타일을 선보이는 르데빠르 프리미어 라인을 통해 이와 같은 드레스를 선보이고 싶다는 욕심을 내게 만든 장면이다.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0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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