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셰익스피어의 뒤죽박죽 희극의 결말은 대부분 결혼식이다. 희극 속의 연인들은 숱한 고생과 오해에 대한 마침표를 찍고 성대한 예식을 통해 해피엔딩에 이른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이후 삶의 행보는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처럼 위대한 작가조차 결혼식이 끝난 이후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한 바가 없다. 애시 당초 행복한 결말을 동화 속 허구라 믿는다면 편하겠지만 신혼부부들이 방금 전에 한 맹세의 무게를 느끼기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 현실에서의 결혼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또한 결혼식이 결혼을 완성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형식보다는 결혼 그 자체의 의미를 충실히 생각해야 하는 데 여기에는 치밀한 계획과 설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적어도 평생의 반려자로 자리할 그 또는 그녀에 대한 면밀한 이해와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둘만이 집중할 수 있는 온전한 시간, 바로 허니문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러한 기회와 시간을 휴양지의 그림 같은 시절로 대체한다. 물론 이러한 허니문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취향에 따라 소신에 따라 허니문의 경향은 다채로워질 필요가 있다.또한 새로운 모험을 감수할 배짱 두둑한 커플들도 많지 않은가. 나오시마(直島)로 향하는 허니문은 다른 휴양지에서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그 무엇이 있다.
나오시마의 문門인 미야노우라항.
명소라 부르며 호들갑 떠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오시마는 일본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에 위치한 섬으로 전체 주민은 38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영국의 여행 잡지
했다. 그런데 정작 이곳은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서해의 낙도쯤으로 인식 되는 외딴 섬이다. 도쿄의 화려함, 오사카의 시끌벅적함, 교토의 고풍스러움과도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이 작은 섬에는 특급호텔 요리사와 일류 큐레이터가 상주하고, 세계적인 예술가의 작품을 두고 아침을 먹고 노천욕을 하며, 해안가에서 수영도 즐길 수 있다. 상반되는 것들이 천연덕스럽게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이다.
나오시마는 아열대성 기후로 가을철에도 따뜻하다. 또 내해를 접하고 있기 때문에 연중 잔잔하면서도 조용
한 파도가 인다. 섬 어디에서든 아름다운 낮과 밤의 풍경이 펼쳐지지만 한때 섬 북쪽에 위치한 제련소 때문에
오염에 찌든 적이 있었다. 이를 극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동향 출신의 기업가 베네세 아트 사이트 나오시마 대표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郎 덕분이다. 그는 선친의 뜻을 이어 어린이 캠프장을 만들 생각이었지만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와의 만남을 통해 섬 전체를 예술과 접목한 휴양지로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공유한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는 일본의 작은 어촌마을을 현대건축과 현대미술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했다.
1 아트하우스를 관람할 수 있는 혼무라 마을.
2 혼무라의 오래된 우동집.
3 자연 그 자체가 예술이자 곳곳에 서 미술품을 만날 수 있는 나오시마는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문 곳이다.
나오시마는 자연과 예술의 결합, 전통과 미래의 공존을 통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지추地
中미술관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흑자로 운영되는 미술관 중 하나이며 고급 리조트인 베네세하우스Benesse
Art Site Naoshima aka Benesse House는 호텔과 갤러리를 통합한 형태로 특실과 나이트 프로그램은 서두
르지 않으면 예약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또한 섬에 있는 오래된 가옥들을 리모델링해서 전시 공간으로 활
용한 아트하우스 프로젝트는 생활과 예술의 거리를 좁힌 사례로 꼽히며 현재까지 계속 진행 중이다. 이렇듯
자연의 혜택에 안주하지 않으면서 또한 이를 저버리지도 않은 나오시마는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
들면서 현대인의 감성을 살찌게 하는 곳이다.
1 오래된 가옥을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아트하우스 프로젝트 중 하나.
2 나오시마의 랜드마크가 된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시리즈.
3 마을 골목에 있는 정겨운 구멍가게.
취향대로 즐기는 나오시마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1시간 40분만 가면 타카마츠高松 공항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리무진을 타고 40분 정도 가면 타카마츠항에 이르고 여기서 페리로 40분을 더 가면 비로소 나오시마에 닿게 된다. 나오시마의 문門이랄 수 있는 미야노우라宮ノ浦항에는 이곳의 랜드마크인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시리즈가 놓여 있다. 친근한 이미지의 이 조형물은 나오시마의 존재감을 단박에 각인시켜주는 작품.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정규 코스일 정도로 누구나 좋아한다. 작은 섬이지만 의외로 선택의 폭이 다양한 곳이다. 섬주민의 생활상을 가깝게 느끼고 싶다면 항구나 아트하우스 프로젝트가 있는 혼무라本村 마을에서 료칸이나 민박집을 숙소로 정하는 것이 좋다. 베네세하우스의 고급 객실에서 지내는 것도 좋지만 비용이 부담된다면 하룻밤만 예약을 하고 다른 숙박시설을 이용해보는 것도 나오시마를 다양하게 느끼는 방법이다. 베네세하우스 인근 해안가에 자리한 몽골족의 이동식 집인 게르Gel가 모여 있는 텐트촌과 일본 다다미방으로 꾸민 츠츠지소つつじ莊는 저렴하면서도 색다른 체험이 가능하므로 일부러라도 이곳에서 숙박을 해볼 만하다. 해안가와 몇 미터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한 이 야영지는 섬 주민들이 애용하는 낚시 공원도 있고 베네세하우스의 레스토랑이나 스파를 사전에 예약만 하면 이용 가능하다. 나오시마는 걸어서 섬 전체를 둘러보거나 무료로 대여하는 자전거를 타고 섬 곳곳의 절경과 인근 마을을 오갈 수 있다. 항구와 혼무라, 지추미술관을 왕복하는 마을 셔틀버스와 베네세하우스 투숙객이 이용하는 전용버스는 미리 운행시간을 알아보는 게 현명하다.
일단 나오시마에 도착한 첫째 날은 결혼식의 여독을 풀 겸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베
네세하우스 갤러리와 산책로 주변에 놓인 작품을 관람하거나 스파를 하면서 느긋하게 즐기는 것이다. ‘베네
세’라는 뜻은 이탈리어 말로 ‘좋은’을 뜻하는 ‘bene’와 존재를 의미하는 ‘esse’의 합성어이다. 이 리조트는 전

1 낮과 밤에 따라 각기 다른 느낌을 전하는 야외 조각품.
2 손으로 쓴 우동집 메뉴판.
3 구식 협궤열차 형태의 베네세하우스 모노레일.
4 몽골족의 이동식 집인 게르. 숙박료가 저렴하므로 알뜰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체 네 개 동으로 각각 비치, 파크, 뮤지엄, 오발 단지로 구분되어 해안가와 산중턱에 위치한다. 각 단지의 객실
은 예술가들이 참여해 디자인을 했고 욕조에서 바다를 보거나 발코니를 통해 아름다운 섬의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중 가장 특색 있는 오벌룸Oval Room은 이곳의 전체 테마를 응집해놓은 곳이다. 단 여섯 개의
별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최첨단 에스컬레이터가 아닌 낡고 덜컹거리는 모노레일을 타야만 한다. 세련된
호텔 시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모노레일을 대면하는 순간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예상치 못
한 이동수단은 독특한 즐거움을 준다. 마치 정적의 숲을 향해 천천히 산 정상으로 끌어 올려지는 듯한 기분이
느껴지는 이 기차는 약 5분의 승차 시간만으로도 나오시마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게 만든다(이 모노레일은 베네세하우스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기에 단 하룻밤이라도 이곳에서 숙박하는 것을 권하는 것이다). 승강장에 도착하면 시원하게 요동치는 분수가 나온다. 이를 지나면 천장과 연결된 고요한 물의 정원이 나온다. 하늘
과 물이 그대로 연결된 듯 이 타원형 중정은 자연이라는 요소를 한가운데 두고 그 사이에 인간의 공간을 사이좋게 배치해놓았다.
베네세하우스가 소장한 작품들은 호텔과 바로 연결된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현대 작가들의 문제작들이 이곳에서의 휴식을 더욱 특별하게 한다. 특히 해안가를 중심으로 야외 작품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항구의 호박시리즈에서부터 해안가에 놓인 난파당한 배의 형상, 돌출된 섬의 절벽에 놓인 액자, 바다로 향한 거대한 구(球) 등은 대부분이 바다에 인접해 있거나 바다를 향해 있다.
(왼쪽) 월터 데 마리아Walter de Maria의
(오른쪽) 오벌룸의 타원형 물 중정. 천장 바로 위는 정원과 연결되어 있다.
지하세계에 자리한 지추미술관
베네세하우스는 일출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간밤에 해안가에서 길을 헤매 늦은 아침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이곳의 시간은 좀 나른하기에 별 지장은 없다. 하지만 지추미술관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
간과 체력을 확보하고 움직이는 게 좋다. 왜냐하면 이곳은 감상할 수 있는 작품 수에 비해 공간의 유희가 충분한 곳이기 때문이다. 지추미술관은 말 그대로 땅속에 있는 미술관이다. 그래서 건축물의 외곽은 존재하지 않는다. 산 정상에 숨어 있는 이 미술관은 마치 연구소를 연상시키는 다소 엄숙한 흰 복장의 진행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티켓 판매소에서 미술관까지 걸어서 가야 한다. 하지만 이 길은 모네의 대형연작인 <수련>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아름다운 연못을 사이에 두고 이어진다. 미술관에 들어서기에 앞서 이 산책로에서 여러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미술관 내부로는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지추미술관은 깊은 지하세계에 이르는 많은 계단과 긴 회랑이 작품들로 안내한다. 이곳을 설계한 안도 다다오는 남들보다 늦게 건축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젊었을 때는 외국에 나가기 위해 권투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건축은 정규 과정이 아니라 독학으로 입문했다. 그는 노출 콘크리트 공법과 일본의 미의식을 접목해 단순하면서도 절제미를 살린 건축을 한다. 그의 작품들은 인공의 산물인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사용하면서도 그 내부에는 주변 자연과의 공생과 인간적인 서정성을 잘 살렸다. 지추미술관 역시 그의 특징을 반영하는 건축물로 이곳에는 클로드 모네, 월터 데 마리아,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미술관은 안도라는 특이한 예술가를 통해 예술을 접하게 되는 새로운 발상으로 빚어진 공간이다. 나오시마의 미야노우라항을 출발해 동쪽으로 가면 혼무라라는 오래
된 마을이 있는데 이곳은 오래된 삼나무 담장을 사이에 두고 좁은 골목들이 이어져 있다. 아트하우스프로젝트는 특별할 것 없는 일본의 구옥과 신사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탈바꿈시킨 것으로 1998년부터 시작해 지금도 예술가들과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진행 중이다. 아트하우스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마을의 골목 사이를 산보하듯이 거닐면 된다. 오래된 가옥 사이를 돌아 다니면서도 작은 게시판도 눈여겨봐야한다. 입장 표시를 아차하면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왼쪽) 원색적인 색감과 위트가 담긴 야외 조각품.
(오른쪽) 땅속에 있는 미술관이라는 상식을 허무는 역발상에서 탄생한 지추미술관. 이곳에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 많이 소장되어 있는데,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의 1984년 작인 <100개의 삶과 죽음>도 그 중 하나이다.
다른 가옥들과 별다른 구분이 서지 않는 이 아트하우스는 민속촌의 박제된 정형성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작은 섬마을 주민들의 실생활을 배척하지 않은 채 그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길은 그냥 할 일 없이 걸어도 좋을 것 같다. 작은 구멍가게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걸어도 좋고 동네 골목길 한쪽에 버티고 선 토실토실한 고양이와 장난을 쳐도 좋다. 또한 한낮의 햇볕이 강하다면 선글라스보다는 양산을 들고 거니는 게 더 어울린다. 동네 마을버스를 놓치면 정거장 벤치에 앉아 맞은편 담배 가게를 멍청하게 구경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배가 출출하면 정거장 옆 연조가 느껴지는 작은 우동집에 들어가 사누키 우동 한 그릇도 먹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일본의 관동지방을 대표하는 면 요리가 소바라면 관서지방의 대표적인 면 요리는 바로 우동이다. 일본 우동의 지존을 지키는 사누키 우동을 혼무라의 이 작은 가게에서 맛볼 수 있다.
그간 나오시마는 대표적인 현대미술관이나 자연과 예술의 성공적인 공생의 사례로 일부 소개되었다. 하지만 나오시마는 이보다 더 넓게 접근해볼 만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이곳은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삶의 여유와 리듬을 회복하게 하며 예술과 밀접해 있는 섬마을 주민들의 소박한 삶 또한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초등학교에 세워진 귀여운 코끼리상이나 마을 주민들이 애용하는 식당과 빵집, 슈퍼마켓이나 낚시 공원을 가보는 것도 또 다른 묘미이다. 간혹 밤길에 길을 잃어버려도 오토바이를 탄 마을 아가씨의 상냥한 안내 덕분에 지척에 둔 숙소를 찾아갈 수도 있다. 관광지 패키지의 편리함을 대신해 이곳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맛보는 섬 마을의 소박함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오시마로 향하는 허니문은 좀 특별해질 수 있는 소지가 많은 것이다. 누릴 수 있을 만큼 찾아갈 수 있는 매력이 나오시마에 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도 말하지 않았던가. 그대 눈뜨면 진정한 기쁨이 있으라!
나오시마 허니문 프로젝트
결혼식이 결혼을 완성하는 것은 아니다
허니문은 두 사람이 함께하는 인생의 출발선이다. 따라서 달콤한 추억 만들기에 그치지 않고 반려자와 함께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법. 자연과 예술, 건축이 어우러진 소박한 섬 나오시마에서 소중한 순간을 값지게 보내는 것은 어떨까.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08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