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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VLGARI

불가리의 감각적인 주얼리 컬렉션

1800년대 말부터 불가리는 최상의 이탈리안 스타일을 대표하기 시작했다. 불가리의 감각적이고 뛰어난 퀄리티를 지닌 주얼리 컬렉션과 시계는 지금도 전 세계 1백50개국의 고객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Wedding Ring Collection

2000년 다이아몬드 웨딩 주얼리 ‘브릴리언트 드림Brilliant Dreams’을 선보인 이래, 웨딩 마켓에서 명품 주얼리&워치 브랜드로 명성을 더욱 높이고 있는 불가리의 베스트셀링 웨딩 아이템.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생산 그룹인 레브 레바이에브Lev-Leviev와의 독점 계약을 통해 더욱 진귀하고 최상의 품질을 가진 다이아몬드를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선보이고 있다.

(왼쪽) 코로나Corona 불가리의 대표적인 웨딩 링. 코로나 링은 가장 로맨틱한 심벌 중 하나인 왕관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불가리 특유의 정교한 스타일로 제품 이름인 코로나Corona는 왕관Crown을 뜻한다. 독특한 디자인과 최상급의 다이아몬드 세팅으로 웨딩 예물 1순위로 손꼽히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0.3캐럿부터 2.0캐럿 이상으로 구성되며, 목걸이와 귀고리 등 세트로 선보인다. 코로나 목걸이는 0.1캐럿 다이아몬드 99개로 구성되어 있다. 제품의 탁월함에 대한 불가리의 엄격한 기준은 불가리 보석 센터에서 발행하는 솔리테르 다이아몬드 확인서를 통해 보장되며, 패키징은 불가리의 유니크함을 더욱 강조한다.

(오른쪽) 왼쪽 부터 비.제로 원B.zero1 젊은 커플들이 커플링으로 가장 많이 선택하는 제품. 남녀 모두 착용 가능한 심플하고 모던한 형태에, 아무 장식이 없는 심플한 원 밴드 링부터 솔리테르 다이아몬드가 중앙에 장식된 제품까지 다양한 가격대와 디자인으로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

매리미Marry Me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에 다이아몬드를 더 빛나게 해주는 브릴리언트 커팅과 플래티넘만이 지닌 깨끗하면서도 순수한 느낌이 어우러진 디자인. 측면에서 봤을 때 다이아몬드 밑의 뾰족한 부분이 보이도록 독특하게 디자인되어 불가리만의 숙련된 기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리페Griffe 전통적인 밴드 형태로 심플하면서도 절제된 우아함이 돋보인다. 솔리테르 다이아몬드의 광채는 클래식한 세팅의 본질과 완벽하게 매치되어 더욱 빛을 발하며, 그리페 링과 커플링이 클래식하게 조화를 이룬다.


불가리, 불가리 시계 BVLGARI, BVLGARI 불가리의 시계 라인 중에서 예물이나 커플 시계로 가장 많이 선택되는 것이 바로 불가리,불가리. 불가리 시계의 베스트셀러이자 시계 디자인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베젤 부분에 두 번 새겨진 불가리의 로고가 인상적이다. 반복된 로고의 디자인이 바로 시계의 이름이 되었으며,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으로 남녀 모두에게, 어느 의상이나 분위기에도 편안하게 잘 어울린다.

새롭게 디자인된 불가리·불가리는 기존의 심플한 다이얼 대신 보다 정교하고 입체적인 다이얼을 채택했으며, 스틸 브레이슬릿의 경우 1백 개가 넘는 부속으로 이루어진 인체 공학적인 설계로 손목을 감싸는 완벽한 착용감을 제공한다. 여기에 유광과 무광이 반복되는 새로운 수공 광택 처리가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남성 시계는 38mm, 여성 시계는 26mm 다이아몬드 인덱스가 특징.


1 콘도티 10번가에 자리하고 ‘올드 큐리어시티 숍’이라 불리던 플래그십 스토어 비아콘도티의 1920년대 모습.
2, 3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이 착용해 눈길을 끌었던 불가리 빈티지 루비 팔찌.
4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제니퍼 애니스톤이 선보인 불가리 빈티지 다이아몬드 목걸이.
5 키이라 나이틀리의 미모와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은 불가리 빈티지 목걸이.
6 2007년 4월 새롭게 문을 연 불가리의 뉴욕 5번가 플래그십 스토어.

THE HISTORY OF BVLGARI
불가리 가문의 선조는 고대 그리스의 작은 마을 에피루스Epirus에서 활동하던 은세공 업자 일가족으로, 불가리 가족의 창시자인 소티리오Sotirio가 이곳에서 은으로 귀중품을 만들었다. 1879년 소티리오가 이탈리아로 이주하였고 그 후 몇 개월 동안 나폴리에서 거주하다 로마로 옮기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핀치오Pincio의 프랑스 아카데미French Academy 앞에서 그가 직접 만든 물건을 팔았고, 그 후 한 그리스 상인이 시스티나 거리Via Sistina에 있는 그의 매장 진열장 한쪽에 소티리오의 상품을 진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소티리오가 판매한 장식품은 독창적인 스타일로 매우 큰 성공을 거뒀다. 이에 힘입어 1884년 소티리오는 시스티나 거리에 그의 최초의 상점을 오픈하게 되었다. 1894년에는 콘도티 28번가로 이주하였고 1905년에는 상점을 콘도티 10번가Via dei Condotti 10로 옮겼다. 상점명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소설의 제목인 <올드 큐리어시티 숍Old Curiosity Shop> 으로 정했는데, 이는 영국과 미국 관광객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였다. 소티리오가 개인적인 장식을 위한 더욱 다양한 종류의 보석과 액세서리를 판매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여름철 로마 시내의 비즈니스가 잠잠할 때, 소티리오는 서머 리조트에서 장사에 편승하기 시작했다. 그는 세인트 모리츠St. Moritz에 정착해 일을 시작했고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 이후로 다른 자회사들이 오픈했고 그 경영은 소티리오의 친척이 직접 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의 은세공업과 주얼리의 예술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즈니스를 한 지역에 집중시켜야 할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로마 본점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20세기 초반은 귀중한 원석과 주얼리에 대한 흥미를 보이며 무역의 묘미를 터득한 소티리오의 아들 조르지오Giorgio와 콘스탄티노Constantino가 서서히 아버지의 자리를 대체해나가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1934년 소티리오가 사망한 2년 후, 콘도티 본점은 확장과 개장을 통해 1934년 4월 9일 새로운 숍이 오픈하였고, 그 성공으로 인해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백과사전 ‘인사이클로페디아 트레카니Enciclopedia Treccani’의 앞장에 숍의 외관과 인테리어가 실리기도 하였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는 불가리의 역사를 전환시키는 시기였다. 이때부터 불가리는 프렌치 스쿨의 엄격한 원칙주의적 기법에서 벗어나 불가리만의 독창적이고 유니크한 스타일을 주얼리에 적용시키기 시작했고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주의, 이탈리안 르네상스, 그리고 19세기 금세공의 대표 격인 로만 스쿨에서 영감을 얻어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1970년대는 불가리에 있어서 국제적 진출을 의미하는 시기였다. 뉴욕에 최초의 해외 스토어를 열었고, 이어 파리, 제네바, 몬테카를로에 숍을 오픈했다. 또한 이 시기에 불가리는 성공적인 클래식 시계 불가리 불가리를 소개하였다. 1980년 초반에는 스위스의 뇌샤텔Neuchatel에서 불가리 시계 라인의 창조와 생산을 위해 불가리 타임을 설립했다. 1984년 조르지오의 아들, 파올로 불가리와 니콜라 불가리는 각각 회장과, 부회장으로 선임되었고 그들의 조카인 프란체스코 트라파니는 CEO가 되었다.

1990년대는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불가리가 향수와 액세서리로 다양화 전략을 실행하였고, 밀라노 증권 거래소에 Holding Company Bvlgari S.p.a.를 상장하며, 런던 증권 거래소의 IRS를 통해서도 거래되면서 국제적인 확장을 펼쳐나갔다. 그리고 2007년 4월 클래식한 전통에 뿌리를 둔 불가리는 전통적 양식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뉴욕 5번가와 57번 거리에 새로운 모습으로 오픈했다.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0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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