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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elry still shines

다이아몬드 반지로 대표되는 결혼반지의 변천사

추억을 간직하는 마법 같은 능력을 가진 보석은 아름답고, 의미 있고, 가치 있고, 상징적이고 그리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작은 먼지가 앉아도 여전히 빛나는 게 보석이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동안 전 세계 신부들은 결혼식 날 보석으로 치장을 했다. 특히 웨딩링은 결혼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아이템. 오늘날 다이아몬드 반지로 대표되는 결혼반지의 변천사를 소개한다.
왼손 넷째 손가락에 낀 반지는 기혼자이거나, 결혼 날짜를 잡았거나, 조만간 결혼할 예정인 여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언제부터 반지가 결혼의 상징물이 되었는지, 누가 생각해낸 것인지, 어디에서 이런 관습이 생겨난 것인지는 어느 누구도 확실히 모른다.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디자인은 셀 수 없이 바뀌었고, 결혼반지를 끼는 손가락도 계속해서 바뀌었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먼저 반지를 주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결혼식 중간에 신랑이 신부의 손가락에 끼워주기도 했다. 변함없이 지속된 것은 반지, 그 자체뿐이다.

반지에 관한 전통은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남자가 아내 될 여자에게 약혼의 정표로 반지를 선물했는데, 이후 예비신부는 이를 왼손에 착용하는 것이 통례였다고 한다. 이때 반지를 선물하는 것은 요즘과 같은 예물의 의미보다는 약혼식을 통해서 신부가 신랑에게 귀속되었다는 의미가 더 컸다. 3세기 로마에서는 놋쇠, 청동, 철 등으로 열쇠 모양의 반지를 만들기도 했는데, 신부가 신랑의 집으로 입성해 그의 재산을 함께 소유하게 된 것을 축하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반지의 열쇠로 보석 상자를 열 수 있었다고.

반지에 반짝임이 더해지다
15세기에 들어서면서 금반지에 보석 장식이 달린 반지가 등장하게 된다. 귀족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자신들의 보석 반지를 과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월별 탄생석에 관해 정리된 것도 이즈음이다. 각각의 원석은 각기 다른 의미를 지녔는데 루비는 고귀한 사랑, 에메랄드는 희망 그리고 최고의 보석으로 꼽히는 다이아몬드는 충성과 신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부유한 집안의 신부들 사이에서는 세공과 장식이 화려한 반지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이 당시 많이 사용된 결혼반지는 금반지 위에 사각형 보석이 두 개 올려져 있는 형태. 보석은 책임과 열정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와 루비가 많이 쓰였고, 보석 아래에는 에나멜로 사티로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숲의 신으로 술과 여자를 몹시 좋아함)나 요정을 그려 넣어 구혼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커플이 약혼식을 할 때 그 반지는 정확히 두 개로 나뉘었다. 사실 이 반지는 두 개의 반지를 하나로 합쳐놓은 것으로 두 개가 각각 분리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신랑이 한쪽, 신부가 다른 한쪽을 하나씩 나눠 낌으로써 혼약을 상징했던 것. 또한 반지 안쪽에는 “신께서 두 사람을 함께 엮었으니 어느 누구도 두 사람을 떼어놓지 못할 것이다”와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결혼식을 올리는 동안 신랑은 자신의 손가락에서 뺀 반지와 신부의 손가락에서 뺀 반지를 하객들 앞에 맞붙여 보이기도 했다.

18세기 아일랜드에서 결혼반지로 많이 쓰였던 클라다 링Claddagh Ring은 양손이 왕관 장식이 달린 하트 모양의 다이아몬드를 잡고 있는 형상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반지는 본래 17세기 이탈리아에서 디자인된 것인데, 아일랜드 사람들이 이를 차용해서 만든 후 마을의 이름을 따 클라다 링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반지 안쪽에 신랑과 신부의 성을 새겨 넣었는데 한쪽은 오른쪽에서부터, 다른 한쪽은 왼쪽에서부터 철자를 교차해서 썼다. 예컨대 조지George와 소피아Sophia라면 ‘GaEiOhRpGoEs’ 이런 식으로 새겼던 것.

한편 16세기 인도에서는 신부에게 반지를 주지 않았다. 그 대신 신부는 여러 종류의 보석을 많이 받았는데, 가족, 친구 그리고 약혼자가 금, 다이아몬드, 은으로 만든 머리 장신구, 코걸이, 목걸이, 팔찌, 발찌 등을 웨딩 선물로 주었다. 당시 결혼을 할 때 받는 보석은 신부의 직위,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는 요소였으며, 어느 지역 출신인지도 가늠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세기 영국에서는 귀족 가문의 여성이라면 공식적인 파티에 갈 때 티아라를 착용하는 것이 예의였다. 또한 결혼을 할 때 신부는 신랑이나 그의 가족에게 결혼 선물로 다이아몬드 티아라를 받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혼식 날에는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쓰고 다이아몬드 귀고리, 목걸이, 팔찌 등으로 장식했다. 뭐니 뭐니 해도 장신구 중 으뜸은 티아라였고 그것은 신부의 위엄과 행복을 상징했다.

운명의 고리를 닮은 반지
시작과 끝이 없는 원형으로 된 반지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래서 결혼을 할 때 사랑의 증표로써 나눠 꼈던 것. 흔히 반지는 넷째 손가락에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로마 시대에는 왼손의 약지가 심장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편 중세 유럽 시대에는 다섯 손가락 중 가장 독립성이 떨어지는 약지에 고리 모양의 반지를 끼는 것은 인간의 독립성의 차단, 즉 정신적, 육체적인 속박을 의미했다고 한다. 신 중심의 사회였던 당시에 인간은 하찮은 미물에 불과했고 성직자와 학자들은 자신을 신과 진리에 영원토록 구속시킨다는 다짐으로 반지를 꼈던 것. 이런 관습은 교회 결혼식에도 도입되어 남자가 여자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것은 여성의 정신과 육체를 남성에게 영원히 속박시킨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치 성직자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신에게 떠맡기는 것처럼. 그러나 요즘에는 신부神父가 혼례식에서 선포하듯 반지는 부부가 나눌 사랑과 신의의 표지이다. 신랑 신부는 이를 교환할 때 자신 마음대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고받는 만큼 이를 통해 운명의 끈이 엮어진다는 사실을 엄숙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운명의 끈인 반지를 장식하는 대표적인 보석은 다이아몬드. 초기에 사람들은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불에도 견디고 무쇠보다 강한 마력에 더 깊이 매료되었던 것이 사실. 그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고 정복할 수도 없는 위대한 힘을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왕은 자신의 권력과 명예를 상징하고 보호하기 위해 다이아몬드로 장식했다. 그러다가 사랑과 결혼 약속의 상징물이 된 것은 15세기경에 이르러서다. 기록에 따르면 1477년에 오스트리아의 왕자인 막시밀리안 대공이 약혼자에게 청혼할 때 다이아몬드 반지를 건네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이후 이 전통은 5백 년 동안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면서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07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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