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IR DE RUISSIE 뀌르 드 뤼시
정신적 멘토였던 보이 카펠을 잃은 충격에 빠져 있던 샤넬에게 나타난 사람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2세의 조카인 드미트리 대공. 그를 만난 1920년대는 코코 샤넬에게 있어 러시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러시아에서 가져온 화려한 보석을 그녀에게 선물했는데, 이는 샤넬의 보석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밀리터리 재킷의 직선적 특성, 두 줄로 늘어선 황금색 단추, 브로치처럼 달린 메달과 장식용 십자가 등은 드미트리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러시아 스타일이 향수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1927년 탄생한 뀌르 드 뤼시는 부츠의 가죽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러시아 병사들이 사용하던 박달나무 타르의 향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1 샤넬의 드레스를 입은 여인의 모습, 1926년.
2 1937년 <보그Vogue>에 실렸던 광고 사진.
3 샤넬과 드미트리 대공. 41936년 판매되었던 ‘뀌르 드 뤼시’.
가브리엘 샤넬Gabriel Chanel, 그 이름만으로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녀는 여성 패션사의 한 획을 굵게 그은 인물이다. 20세기 초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옷을 입는 상류층 여성들에게 그와 어울리는 향수를 만들면서 디자이너 브랜드의 향수 제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당대의 유명한 디자이너였던 폴 푸와레조차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샤넬은 달랐다. 지금까지도 명성을 잇고 있는 ‘샤넬 넘버5 N。5’는 향수를 지칭하는 고유 명사화된 지 오래. “대체될 수 없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과 달라야 한다”는 그녀의 평소 신념처럼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나름의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향수에 ‘수리르 다브릴(4월의 미소)’, ‘데지르 프랭시에(봄의 욕망)’ , ‘쾨르 드 잔네트(잔네트의 마음)’ , ‘이브레스 수아르(저녁의 도취)’ 등 시적이고 몽환적인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향수병도 큐피드가 조각된 유리 마개로 장식하는가 하면 병 안쪽에 조각을 하는 등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유리 공예, 아르데코 양식이 성황이었던 당시에는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용기가 예쁜 향수를 모으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단순 명료한 명칭을 붙였듯 사각형의 하얀 유리에 검정색 로고만 새긴 병에 담아 그 안에 있는 금빛 액체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렇게 시작된 샤넬의 향수는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특유의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향으로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2007년 2월, 무려 10개의 샤넬 향수가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발매된다. 1920년대에 판매되었던 4개와 현재 샤넬의 조향사인 쟈끄 뽈쥬가 패션, 화장품, 시계, 보석 등 그녀와 관련된 모든 아이콘을 녹여 만든 6개로 구성된 ‘샤넬 레 엑스클루시브Chanel les Exclusifs’가 바로 그것. 이 10개의 향수에는 샤넬의 사랑과 인생이 응축되어 담겨 있다. 에르네스트 보와 샤넬 향수의 시작
샤넬의 향수 사업은 대성공이었는데, 이는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처음으로 알데히드를 향수 제조에 활용해 이전과는 다른 제작 방식으로 향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렇지만 현대식 향수의 선구자인 그가 최상의 향을 만들 수 있었던 것 또한 샤넬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샘플을 보여주면서 ‘향은 뛰어나지만 제작하려면 비용이 아주 많이 들 것입니다’라고 하자 샤넬은 한 술 더 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 그래요? 그 성분 가운데 가장 비싼 것이 재스민이라고요? 그렇다면 재스민을 더 많이 넣으세요.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비싼 최고급 향수를 만드세요.”
1921년에 에르네스트 보는 24종류의 성분에 재스민 향료와 알데히드를 혼합해 1번에서 5번까지 그리고 20번에서 24번까지 번호를 매긴 두 종류의 향수 견본을 만들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그녀는 5번과 22번을 선택했고, 각각 ‘넘버 5 N。5’와 ‘넘버 22 N。22’로 모습을 드러낸 것. 이번에 재발매되는 ‘넘버 22’는 넘버 5 와 같이 만들어졌지만 1년 후인 1922년에 판매된 플로랄 계열의 바로 그 향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