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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엉덩이 미학

영장류에 속하는 193종 가운데 인류만이 매끈하게 돌출된 반구형 엉덩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에 대한 미감을 일찍부터 알아차린 예술가들은 엉덩이를 작품의 주된 소재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이 바뀌듯 고대부터 현대 미술 작가에 이르기까지 엉덩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각기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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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로 뒤덮인 납작한 엉덩이가 보드라운 살결로 싸인 곡선형을 갖추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면서 엉덩이 근육이 발달하게 되었고, 점차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던 것. 우리와 가장 가까운 종(種)이라고 여겨지는 침팬지의 엉덩이도 사람에 비하면 밋밋하기 그지없는 형태이다. 취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살집이 없는 마른형보다는 풍만한 쪽을 훨씬 더 매력적으로 여겼던 것 같다. 현대 이전, 남성 화가가 대부분이었던 시절에 그려진 누드 여성들을 보면 이런 면이 확연히 드러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뽀얀 피부색과 탱탱한 질감이 아름다움의 여부를 좌우하는 요건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설화석고처럼 희거나 맑은 갈색을 띠고, 복사꽃처럼 부드러운 혈색이 돌고, 살결이 탄탄하고 포동포동하되 너무 뚱뚱하거나 살이 무르지도 않은 엉덩이를 최고로 여겼다. 그러나 이는 여지에 한해서다. 둘 사이에는 미학적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남자의 엉덩이는 근육의 기복에 의해 그 형태가 잡히지만 여자의 엉덩이는 지방 조직이 얼마나 잘 퍼져 있느냐에 따라 심미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남성은 2백억 개의 지방 세포가 있지만 여성은 그 두 배, 즉 4백억 개의 지방 세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남성의 엉덩이는 작고 좁고 단단하고 근육질인 반면 여성의 엉덩이는 훨씬 더 펑퍼짐하고 부드러운 것이다.
 



 
오달리스크의 엉덩이 곡선을 따르는 시선
오달리스크란 원래 터키의 하렘에서 황제를 모시던 여자 노예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1765년에 하렘의 모든 여자를 통칭하는 단어로 바뀌었다. 등을 보이고 옆으로 길게 누워있는 오달리스크는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때로는 팔꿈치를 괴거나 엉덩이를 드러내기도 하고, 극도로 권태롭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있기도 한다. 물론 항상 누드인 채로 말이다. 이처럼 화가에 따라 약간씩 다른 포즈로 그렸지만, 어떤 오달리스크든 그녀의 엉덩이 곡선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1599~1660)는 오달리스크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린 최초의 화가였다. 등을 보인 채 검은 침대 시트 위에 누워 있는 그녀는 나체의 푸토(Putto, 르네상스 시대의 장식적인 조각으로 큐피드 등 발가벗은 어린이의 상)가 들고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여기서 비너스는 허영의 여신을 우의적으로 암시한 것으로, 작품 속에 터키를 연상시키는 요소는 전혀 없다. 엉덩이가 검은 시트와 대조를 이루면서 눈부시게 빛나고, 나이 든 여인처럼 살이 처지거나 물렁해 보이지도 않지만 오달리스크적인 신비감과 매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젊고 날씬한 사랑스러운 여성일 뿐. 반면, 신고전주의 시대의 대표적 화가인 장 오귀스트 앵그르(Jean Auguste Ingres, 1780~1867)의 ‘그랑드 오달리스크(1814년)’는 이와는 사뭇 다른 감흥을 준다. 이국적인 스타일의 커튼과 장식물 등 동양적인 스타일을 배경으로 누워있는 여인은 유려하기 그지없다. 백조의 목이나 연체 동물의 다리처럼 길고 흰 팔을 길게 늘어뜨린 그녀의 뒷모습을 자세가 매우 특이하다. 아니, 비스듬히 누운 여인의 허리는 기형적일 정도로 길다. 사람들이 그림을 분석해 보니 실제 인체보다 척추 세 마디를 늘려서 그린 것이었다. 이처럼 그는 등허리선의 아름다움을 위해 대담한 데포르마시옹(Deformation, 형태 왜곡)을 마다하지 않았다.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06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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