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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 문구를 고민중이라면

청첩장을 위한 시

청첩장 문구를 고민 중이라면, 시에서 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마음에 드는 구절을 찾고, 둘만의 이야기를 담아 각색하는 동안 결혼의 의미가 다시 아로새겨질 것이다.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태준)



일륜월륜(日輪月輪) -전혁림의 그림에 부쳐
아름다운 바퀴가 굴러가는 것을 보았네
내 고운 님의 맑은 눈 같았지
님의 가는 손가락에 끼워준 꽃반지 같았지
대지에서 부르던 어머니의 노래 같았지
아름다운 바퀴가 영원히 굴러가는 것을 보았네
꽃, 돌, 물, 산은 아름다운 바퀴라네
이 마음은 아름다운 바퀴라네
해와 달은 내 님의 하늘을 굴러가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도종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중략)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김용택)



백 년
백 년을 만날게요
십 년은 내가 다 줄게요
이십 년은 오로지 가늠할게요
삼십 년은 당신하고 다닐래요
사십 년은 당신을 위해 하늘을 살게요
오십 년은 그 하늘에 씨를 뿌릴게요
육십 년은 눈 녹여 술을 담글게요
칠십 년은 당신 이마에 자주 손을 올릴게요
팔십 년은 당신하고 눈이 멀게요
구십 년엔 나도 조금 아플게요
백 년 지나고 백 년을 한 번이라 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을 보낼게요
_이병률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박남준)



나도야 물들어간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대의 곤한 날개 여기 잠시 쉬어요
흔들렸으나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작은 풀잎이 속삭였다
어쩌면 고추잠자리는 그 한마디에
온통 몸이 붉게 달아올랐는지 모른다
사랑은 쉬지 않고 닮아가는 것
동그랗게 동그랗게 모나지 않는 것
안으로 안으로 깊어지는 것
그리하여 가득 채웠으나 고집하지 않고
저를 고요히 비워내는 것
아낌없는 것
당신을 향해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작은 씨앗 하나가 자라 허공을 당겨 나아가듯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여간다는 것
맨 처음 씨앗의 그 간절한 첫 마음처럼


구구 (고영민)



시클라멘
화분에 붉은 꽃대 두 주가
나란히 올라와 서 있다
혼례를 올리는
신랑 신부 같다

신랑은 신부를, 신부는 신랑을
아내와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영원히 사랑하겠느뇨?

주례목사가 되어 나는 묻고
눈먼 신부가 울음을 터뜨렸는지
꽃 이파리의
뒷등이 흔들렸다
키 작은 신랑의 어깨도 흔들렸다

오늘은 눈이 부시게 좋은 날!
부케를 던지고
가까운 온천에 신혼여행이라도 다녀와야지

꽃이 피었다가 지는 사이,
저 캄캄한 꽃들에게도
평생 지켜야 할 약속이
생겼다


바다는 잘 있습니다 (이병률)



두 사람
세상의 모든 식당의 젓가락은
한 식당에 모여서도
원래의 짝을 잃고 쓰여지는 법이어서

저 식탁에 뭉쳐 있다가
이 식탁에서 흩어지기도 한다

오랜 시간 지나 닳고 닳아
누구의 짝인지도 잃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가도
무심코 누군가 통에서 두 개를 집어 드는 순간
서로 힘줄이 맞닿으면서 안다

아, 우리가 그 반이


김수영 기자 사진 및 자료 협조 문학과지성사(02-338-7222), 문학동네(031-955-8888), 실천문학사(02-322-2161), 위즈덤하우스(031-936-4091)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18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