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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디자이너 이영희

이것이 대한민국 한복이다

평범한 주부에서 사십이 넘은 나이에 한복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린 이영희는 인생의 절반을 오로지 한복을 만들고, 세상에 알리는 일에 단 일분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숨 가쁘게 달려왔다. 한복이 곧 대한민국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파란만장한 한복 인생을 되짚었다.


역사를 공부하고 문헌 자료를 연구해 지은 한복들.
왼쪽부터 시대별로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조선시대-근대-현대 순이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그저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평범한 주부에서 한복 디자이너로
집에서 손수 염색해 한복을 지었을 만큼 솜씨와 정성이 뛰어난 어머니 밑에서 자연스레 한복의 멋을 알고 자란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어린 시절부터 색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던 어머니에게서 보는 눈과 디자인 감각을 키워온 그녀가 타고난 한복장이가 된 것은 어찌 보면 잘 짜인 각본처럼 예견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이 셋을 키우며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면서도 아이 옷 하나라도 예쁘고 독특한 것으로 골라 입혔고, 음식 하나를 해도 맛깔스럽게 만들어 예쁜 그릇에 담아야 직성이 풀릴 만큼 사소한 일에도 유난을 떨었던 그녀는 친척 언니 소개로 솜과 이불 장사를 시작 하면서 어느새 주부가 아닌 사업가가 되었다. 버려지는 자투리 옷감이 아까워 옷을 지어 입었고, 결국 마흔 가까운 나이에 본격적으로 한복을 지으면서 한복과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됐다.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습득한 감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닥치는 대로 책도 읽고, 뒤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해 염직 공예를 배웠으며, 전통 복식학자였던 고 석주선 박사를 찾아가 전통 한복을 배우는 등 한복 공부에 열심히 매진하며 이론과 실무를 다졌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한복을 짓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영희 한복은 나날이 유명세를 탔고, 그녀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싶어 한복으로 패션쇼를 연 것. “한복으로 무슨 패션쇼를 하냐며 폄하하던 이들도 일 년에 수차례 패션쇼를 하면서 새로운 한복을 만들어내는 저를 보며 비난이 칭찬으로 바뀌었어요. 점차 사람들이 저를 한복 디자이너로 불러주기 시작했죠. 이런 용기와 무모함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냐고요? 한복의 아름다움을 믿었기 때문에 그저 이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파리 컬렉션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은 이영희의 한복 드레스.


의복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이영희의 한복.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디자인에 사람들은 그녀를 ‘색의 마술사’라 부른다.

한복, 파리와 뉴욕에서 이름을 알리다
그 당시 한복 패션쇼도 매우 생소했는데, 이영희 디자이너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파리 컬렉션에 도전장을 던졌다. 컬렉션에는 전통 의상에 제한이 있어 한복의 디자인과 소재들을 모티브로 완성된 이영희만의 의상을 선보였다. 이영희의 세계 진출은 부와 명예나, 사업 확장이 목적이 아니었다. 사비를 털어 외국에 건너 갔기에 오히려 그녀의 통장 잔고는 쑥쑥 줄어들었다. 그저 그녀가 입이 마르도록 얘기하는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고,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일을 추진하고, 하고자 마음먹은 일에는 망설임이 없는 성격이었기에 그녀의 한복은 파리 컬렉션은 물론이고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도 올라 외국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 한복은 물론이고 한복의 느낌을 살린 모던 한복까지 세계의 패션 피플들은 디자이너 이영희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더이상 기모노 코레가 아닌 한복에 대해 눈뜨게 되었다. 뉴욕에 진출하면서 파리에 있던 부티크를 철수하게 돼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지만, 여러 지인의 도움으로 뉴욕 맨해튼에 그녀의 이름을 건 한국문화박물관을 열면서 위안을 삼았다.
“저는 아직도 못 다 이룬 꿈이 많아요. 한국 전통문화, 구체적으로 한복이라는 전통을 세계에 더 많이 더 널리 알리고 싶어요. 어떤 일이든 한복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면 힘을 보탤 겁니다.”


과거를 모르면 현재가 없고, 조상의 문화를 버리면 현재의 문화도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통을 알아야 하고, 한복을 입는 것이 곧 문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 결혼을 준비할 때 한복을 생략하는 신랑 신부가 늘어나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아름다운 한복을 만드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말하는 이영희 디자이너.
2,3 하나둘씩 차곡차곡 모은 한복 소품들.

한복도 조기 교육이 필요하다
디자이너 이영희가 한복에 대해 깊은 마음을 품게 된 것은 문화와 전통을 이해했던 어머니의 조기 교육이 바탕이 됐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지어준 색동저고리를 자주 입어서인지 그녀 역시 결혼해서도 아이들은 물론 손주들까지 때마다 색동저고리를 지어줬다. 이런 조기 교육 덕분에 그녀의 식구들과 지인들은 한복이 전혀 낯설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입는 일상적이고 당연한 옷이다. 요즘 신랑 신부들이 한복을 생략하거나 빌려 입는 추세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한복을 생략한다고 젊은 사람을 나무랄 수는 없어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힌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어색하고 가벼이 여길 수 있죠. 그래서 조기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찌감치부터 한복 문화를 접하게 해 세대를 이어 한복이 당연하고 꼭 필요한 우리의 문화가 될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한복을 즐겨 입는 문화를 만들고, 한복의 아름다움을 자주 접하도록 지금부터라도 시작해보세요. 이런 한복 문화 조기 교육은 나라에서, 가정에서 10년은 바라보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꿈 많은 소녀에서 주부로, 살림꾼에서 한복장이로, 세계에 한복을 알린 디자이너이자 문화 전도사로 이영희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고, 다만 늦은 마음만 있을 뿐이라고 당차게 말하는 그녀. 맨손으로 시작해 세계 무대에서 당당하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린 디자이너 이영희가 있어 한복의 미래는 눈부시다.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14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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