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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을 만나다

전통은 오방색이다

한복에 대한 열정과 특출한 솜씨, 뛰어난 디자인 감각이 그의 한복 인생의 8할이었다면, 나머지 2할은 아직 채워가는 중이라고 말하는 디자이너 김영석. 자유롭게 해석해야 전통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오방색’이라는 테마로 <마이웨딩>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올렸다.


청・적・황・백・흑
오방색이 골고루 담긴 전통 한복. 그 매력에 빠져 한복 디자이너가 되었고, 여전히 한복 짓는 일이 즐겁다고 말하는 디자이너 김영석.



왼쪽 조선 중기의 저고리. 그는 전통 복식과 역사와 관련된 책과 논문을 늘 가까이 하며 전통을 공부하고 이해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오른쪽 앤티크 수집가답게 오랜 시간 하나둘씩 모은 소품들이 많다.


색의 기본, 오방색을 말하다
서른 중반, 한복이 가진 묘한 매력에 이끌려 뒤늦게 한복 디자이너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김영석. 그는 어릴 때부터 사내아이들의 놀이보다는 할머니의 조각천을 이어 무언가를 만들고, 바느질을 하고, 자수를 놓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더없이 즐거웠고, 자신의 손끝에서 무언가 탄생한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타고난 즐거움을 거스를 수 없었던 그는 서른을 훌쩍 넘어 전통 공예에 관심을 가지면서 인연을 맺은 침선장에게 본격적으로 바느질을 배웠고, 불혹을 넘긴 나이에 삼청동에 첫 매장을 열었다.

젊은 남자가 한복을 디자인하겠다고 나섰을 때 현대적이고, 퓨전화된 한복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는 한복을 알면 알수록, 공부하면 할수록 전통 복식에 집중했다. 컬렉터로도 유명한 그는 개화기 시대의 가구와 병풍, 공예품을 수집할 만큼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이 깊었고, 관심이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한복의 매력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전통 한복을 제대로 만드는 일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더도 덜도 말고 ‘전통한복 김영석’이라는 브랜드 이름에서 그의 속깊은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전통 한복 짓는 일이 평생 ‘업業’이 되어도 좋겠다는 결심을 한순간 그는 진짜 한복쟁이가 되어 있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화려한 전통 복식 안에는 오방색이 있고, 청·적·황·백·흑, 오방색 안에는 우리의 전통과 역사, 세상의 이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전통’이란 화두에 더욱 힘을 실었다. 가장 고귀한 색으로 다루어지며 임금의 옷을 만들었던 황黃,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색으로 쓰인 청靑, 진실·삶·순결을 뜻해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즐겨 입었던 옷 색깔인 백白, 생성과 창조, 정열과 애정을 뜻해 강한 벽사의 빛깔로 쓰인 적赤, 오행 가운데 인간의 지혜를 관장한다고 생각한 흑黑까지 오방색은 단순히 아름다운 색채일 뿐 아니라 음양오행사상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오방색이 자유자재로 표현된 한복은 복식이기 이전에 우리의 역사와 삶이 담겨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대목. 그는 오방색으로 이루어진 전통 한복으로 언제나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 전통 한복 짓는 일이 평생 ‘업業’이 되어도 좋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 그는 진짜 한복쟁이가 되어 있었다."


자유롭게 해석되어야 전통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 리움미술관장 홍라희,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을 비롯해 여러 유명인의 한복을 디자인하며 유명세를 탄 그이지만 최근 한국 최초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의 한복을 만들며 집중 조명을 받게 됐다. 박 대통령이 취임식 때 입은 한복은 태극기를 상징하는 파란색 치마와 저고리, 붉은색 두루마기, 고려 때부터 사용하던 광택 나는 원사로 포인트를 준깃과 고름 등 오방색을 적절하게 섞은 전통 한복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단순히 눈으로 봤을 때 아름다운 옷이 아니라 색에 담긴 의미, 문양이 주는 상징성, 우리 선조들이 남긴 역사적 고증까지 디자인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고 메시지를 넣으려는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전해진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결혼할 때 점점 한복을 생략하고 전통을 왜곡한 정체불명의 한복이 판을 치는 요즘, 그의 전통 한복이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유롭게 변형된 한복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자유자재로 해석되고 변형되어야 진짜 전통이 보이거든요. 저처럼 전통 한복을 고수하는 사람도 있고, 시대와 분위기에 맞게 퓨전 한복을 짓는 디자이너도 있어야 한복이 사라지지 않고 전통이 유지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억지로 만든 한복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은 반대예요. 결혼식 때는 드레스를 입되, 예식이 끝난 후 파티 때 입을 색다른 한복을 만드는 것이 순리에 맞는다고 봅니다. 새해 인사를 올릴 때 한복을 입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죠. 단 스타일이나 디자인, 색상에 한정하는 한복이 아니라 그 안에 전통과 메시지, 한국인의 정서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그간 지켜온 전통을 바탕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한복을 짓는 것이 앞으로의 바람이라고 말한다.


"자유자재로 해석되고 변형되어야 진짜 전통이 보인다고 생각해요. 저처럼 전통 한복을 고수하는 사람도 있고, 시대에 맞게 퓨전 한복을 짓는 디자이너도 있어야 한복이 사라지지 않고 전통이 유지될 수 있다고 봅니다."

“고려 시대, 조선 시대 한복 스타일이 달랐던 것처럼 시대에 맞게 의복은 변하기 마련이죠. 21세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한복만이 정답이라고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 입을 수 있는 한복이어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 한복이 결국 전통이 되겠죠. 패션의 흐름이 돌고 돌 듯 조선 중기의 저고리가 다시 유행할 수도 있고요.” 그는 요즘 한복의 매력을 알고 뛰어든 젊은 디자이너들이 많아 뿌듯하다며 한복의 미래를 밝다고 말한다. “한복의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앞으로 한복 문화와 그 시장이 절대 축소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한복에 반해 주저 없이 이 길을 선택했던 것처럼, 세계인이 극찬하는 의복 한복,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의복 한복이 되도록 그 매력 을 알리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저는 한복을 지을 겁니다.


1,2 전통을 공부하고 이를 지키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디자이너 김영석. 그 길에 늘 오방색이 함께했다.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14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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