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영화 속 캐릭터를 통해 남과여, 사랑을 말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각은 남자와 여자가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이에 한 남자와 한 여자에게 같은 영화를 보고 그 속에 등장하는 남녀와 사랑을 각자의 시각에서 해석해줄 것을 요청했다.

노팅힐 Notting Hill
Character 윌리엄 대커(휴 그랜트 분), 안나 스콧(줄리아 로버츠 분)
Story 윌리엄 대커는 웨스트 런던의 ‘노팅힐’에 사는 소심한 남자.
독신의 괴상한 친구와 함께 사는 그는 노팅힐 시장 한쪽 구석에 위치한 조그마한 여행 서적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어느 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기 영화배우 안나 스콧이 그의 책방에 들러 책을 사 간 얼마 뒤 또다시 두 사람이 길모퉁이에서 부딪히면서 두 사람의 쉽지 않은 사랑은 시작되는데….

늘 그렇듯,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에겐 도무지 감정이입이 되질 않는다. 마치 거세된 공작새 같다고 할까? 여성들이 원하는 각양각색의 빛깔로 장식된 꼬리털을 뽐내며, 전혀 현실감 없이 스크린 위에 등장한다. 그 모든 곳에 위대한 프로이트가 거론한 ‘리비도’ 따위는 낄 틈이 없다. 수컷에게는 물속의 고기처럼 일상적인 음담패설 한 토막조차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절대로 입에 올리지 않는다. 윌리엄 대커를 한번 살펴보자. 물론 그녀의 처지가 측은하다는 것은 안다. 그녀를 보호하고 싶은 뭉클한 짝사랑의 순수함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는 그 정결한 사랑의 건너편에 엄연히 존재하는 수컷으로서의 욕망을 결단코 드러내지 않는다. 그 결과로 너무도 인간적인(‘남성적인’이 아니다) 동거인이자 친구를, 완벽한 대비효과를 통해 ‘이상한 놈’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보통의 남자들을 평균치로 표현한다면, 윌리엄 대커보다는 그 이상한 놈 쪽이 좀 더 가까울 것이다.

자기 손톱 밑의 가시가 세상에서 제일 아프다지. 아마 눈앞에 피흘리며 쓰러진 사람이 있어도 욱신거리는 손톱 밑 가시부터 쑤욱 뽑아내고 나서야 “괜찮으세요”하며 달려가볼 것이다. 그녀도 마찬가지. 아무리 남들이 여신이라고 추앙한들 뭐 하나? 당장 내가 울적하고 외로운데. 어딜 가든 파파라치를 몰고 다니는 민폐 덩어리이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 놓치고 싶진 않아. 주목받는 나로 인해 그 사람이 곤란해지고 힘들어져 상처받을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내 감정이 우선. 사실 처음엔 별생각 아니었겠지 싶다. 그냥저냥 귀여운 책방 주인아저씨. 왠지 뒤끝도, 스토커 기질도 없어 보이거든. 내 미모야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으니 여차하면 금세 넘어올 거고. 그녀는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툭 건드리듯 유혹해 꿀꺽 먹었다가 괜히 성질 풍풍 부리며 떠나버린다. 분명 처음은 아닐걸. 예전에도 그런 식으로 평범한 남자들 좀 갖고 놀았을걸. 미인은 얼굴값 좀 해줘야 하는 거거든.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Character 조엘(짐 캐리 분),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즐릿 분)
Story 조엘은 여자친구 클레멘타인이 자신과의 기억들을 정신치료 과학자 미어즈위크 박사의 실험 과정을 통해 머릿속에서 모두 ‘제거’했음을 알고 깜짝 놀란다. 절박한 심정에 미어즈위크 박사를 찾은 조엘은 자신의 머릿속에서도 클레멘타인의 기억들을 지워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삭제 과정이 시작되자 조엘은 자신이 진정으로 클레멘타인을 잊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영화를 통해 미셸 공드리 감독은 ‘사랑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우린 왜 사랑의 실패에 목 놓아 울부짖으면서도 또다시 사랑에 빠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감독의 혜안은 영화 속 두 배우 특히 짐 캐리를 통해 완벽히 구현된다. 영화 속 마지막 장면에서 남녀 주인공이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감독은 관객에게 묻는다.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고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 그 사람과 다시 사랑에 빠질 것인가? 그러나 영화를 통해 감독이 들려주고픈 진짜 이야기는 그 너머에 존재한다. 우리 모두는 지나간 사랑에 아파하면서도 결코 지난 사랑이 남긴 추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조엘은 찌질한 남자들의 속성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클레멘타인은 보헤미안 같은 원색의 취향을 드러내며 흑백으로 저장된 추억에 아름다운 색채를 부여한다. 그녀는 우리가 놓쳐버린 과거의 사랑이고 그는 현재의 우리니, 어떻게 두 캐릭터에 시비를 걸 수 있겠는가?

그녀는 독특하다. 좋게 말하면 개성 만점, 나쁘게 말하면 이상한 여자. 파랗게 염색한 머리칼을 흩날리며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화가 나면 버럭버럭 소리 지르며 다 엎어버리는 성격. 매력 있다고? 글쎄, 그보다는 피하고 싶다. 그런 그녀가 소심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녀답게 화통하게 한 번에 빠졌다. 하지만 사사건건 부딪히고 그럴 때마다 소리를 버럭버럭. ‘아, 이건 지옥이야. 헤어져야지’ 하고 단박에 끝내버린 후 충동적으로 기억 소멸 업체를 찾아간다. 역시 성격 나온다. 그 남자와의 추억만 쏙쏙 골라서 모조리 지워달라고 부탁한다. 영화를 보던 나는 그녀에게 묻는다. “너, 남자에게 미안하지 않니?” 그녀가 대답한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냐. 당장 내가 힘들다고.” 사랑에서는 누구나 피해자가 되기도,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그걸 탓할 순 없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과정. 그러나 현실도피만을 꿈꾸는 그녀는 유죄. 당신은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았음, 탕탕탕.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
Character
윌톰(조셉 고든 레빗 분), 썸머(주이 데샤넬 분)
Story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운명적인 사랑이 나타날 것이라 믿는 순수 청년 톰. 어느 날 사장의 새로운 비서로 나타난 썸머를 처음 보는 순간 강렬한 스파크를 일으키며 자신의 반쪽임을 직감하지만 사랑도 남자친구도 믿지 않고 구속받기 싫어하는 썸머 때문에 그냥 친구 사이로 지내기로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발전하게 되고 이제 관계의 변화를 위한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 다가오는데….

이 영화 속 두 주인공들은 그 현실성을 떠나 사랑을 통해 변해간다는 점에서 공감이 간다. 사랑이란 괴물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운명적 사랑을 믿는 톰과 믿지 않는 썸머. 물론 이 설정에 시비를 걸자면 구멍은 충분히 있다. 이건 사랑 따윈 해본 적 없는, 아니 어쩌면 너무 잘 아는 사람이 영화적 상황을 위해 억지를 부려놓은 것 같다. 운명적 사랑을 믿는 사람은 그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과 결코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운명이란 두 사람의 스파크를 통해서 비로소 확인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영화 속 톰은 그저 썸머와 사랑에 빠지기 위한 핑계가 필요한, 그렇고 그런 평범한 남자인 셈이다. 사랑을 믿지 않는 썸머의 캐릭터도 조금은 억지스럽다. 아무리 모진 과거가 있는 여자라도 그 나이에 사랑을 믿지 않기보단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게 더 쉽지 않겠나. 그렇다 하더라도 영화는 참고 볼만하다. 남녀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사랑의 보편적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 남자 귀엽다. 게다가 날 좋아한단다. 역시 여자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보다는 나를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는 게 편하다. 그래서 데이트를 시작한다. 외로워서 계속 만나다 보니 정도 꽤 들기 시작한다. 100일 정도 만날 때까진 딱 좋다. 그런데 200일쯤 되어가니 난감해진다. 슬슬 집착증세를 보이는 게 아닌가. 남자들은 다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다. 얼굴 되지, 몸매 되지, 아직 젊지, 더 놀고 싶은데 왜 자꾸 구속을 하는지 짜증이 난다. 다행히 폭력을 쓸 것 같진 않으니 이쯤에서 깔끔하게 끝내고 친구로 남기로 한다. 난 소중하니까. 그런데 신기하다. 그 남자와 헤어지자마자 진짜 괜찮은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은 생각도 안 해본 결혼, 이 사람이랑은 하고 싶다. 남자가 알면 열 받겠지만 그건 남자 팔자. 어차피 새 여자 생기면 남자도 다 잊을 거다. 내가 나쁜X이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차피 진짜 내 사람 만나기 전까진 다 거쳐가는 과정인 거지. 스쳐 지나간 남자에게 안녕을 고한다. 

이 글을 쓴 한 남자는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이다. 전공 분야는 팝음악이지만 사랑에 관한 그의 견해는 전문가 뺨치는 수준.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는 한편 공중파와 케이블TV를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그는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다. 이 글을 쓴 한 여자는 카투니스트 신예희다. 그림은 물론 글도 쓰고 사진도 찍는 그녀는 와인에 관한 탁월한 미각과 안목을 지닌 인물. 여러 매체에 글과 그림을 기고하며 저서로는 <까칠한 여우들이 찾아낸 맛집 54> <결혼 전에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한 서른여섯 가지> 등이 있다.

디자인하우스 [MYWEDDING 2010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List http://bit.ly/1Qh5IsJ